전직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이 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의 수순
을 남겨놓은 선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으나 대선자금공개 문제가 정
치권의 불안한 뇌관으로 남아있다.

언제터질지 또 터졌을때 어느 정도의 파장이 미칠지에 대해서는 정치
권 스스로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정서상 어떤형태로든 공개돼야할 부분인데도 여야 정치권은 분명
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여권은 이미 지난 일인데다 특히 김대통령의 경우 집권후 기업등으로부
터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마당
에 과거의 관례에 따라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일부 지원받았다
고 해서 지금와서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앞으로는 그같은 부도덕한 정치자금수수가 없어야한다는 선에
서 사건이 마무리되길 희망하고 있다.

국민회의측도 겉으로는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김총재가 20억원을 받았다고 밝힌 이상 더 들추어내 봤자 득이 되지 않는
다는 입장인것 같다.

여야정치권은 그러나 "김대통령이나 김총재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비난을 받고있는 노전대통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면 결국
같은 사람들이 아니냐"는 세찬 비난여론이 수그러들지 여부를 예의주시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걸음 나아가 노전대통령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의 규모는 물론 전체
대선자금의 규모와 조성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수준으로 여론이 고조
될까봐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선자금을 밝히게 될 경우 김대통령이나 김총재의 대선자금은 선관위
에 신고한 금액보다 훨씬 많을것이이라는 게 일반의 확신이어서 어떤 선
에서 해명해야할 지 고민일 수 밖에 없다하겠다.

지난 92년의 대통령선거때 여권의 경우 지구당별로 적게는 3억원선에서
많게는 10억원정도가 전국 2백37개 지구당에서 선거자금으로 뿌려졌다는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 후보가 참석하는 중앙당차원의 유세비로 5백억원선이 지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사조직운영비,관변단체등에 대한 지원등을 합치면 대선 총비용은
적어도 3,4천억원에 이를것으로 예상되고 일부 야권에서 주장하는 1조원
설도 전혀 맹랑한 수치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야권의 경우도 여권의 3분1수준이 지출됐을것이라는게 정치권의 통설이
다.

이같은 엄청난 자금의 조성경위는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경위와 대
동소이하다는게 또한 정치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조성경위는 차치하고 선관위의 한도를 초과한 대선자금은 엄밀하게 따지
면 선거법위반이 되고 현정부가 주장하는 문민법치주의하의 국가에서라면
당연히 사법처리의 대상이 돼야한다는 부담을 안고있다.

법집행의 형평성문제도 제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집권세력의 도덕성에도 또 한차례 흠집이 날것이다.

때문에 여권은 노전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에서 대선자금 문제
가 불거져 나오지 않기만을 기대하는 눈치다.

어차피 받을 의혹은 의혹으로 끝나야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스스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인것 같다.

정치권의 핵폭발성 뇌관을 노전대통령측과 현여권핵심부중 어느쪽이 과
연 건드리게 될지 아니면 양쪽이 이를 불발탄으로 만들어 버릴지 관심을
끌고있다.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