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지은 대련 시구절을 들은 가정은 머리를 내저었다.

"틀렸어. 아직 미숙해"

그리고는 가정이 문객들을 데리고 나오다가 문득 가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집안을 둘러보니 방마다 책상, 걸상 같은 것들은 잘 갖추어져
있는데, 그밖에 휘장이니 장막, 놀이개감, 골동품 따위의 장식품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가진이 가정에게로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장식품들은 지금 모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 정도 충분히 모아지면 그때 가서 각 곳에 어울리게 진열을 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어제 가련에게서 들으니 장막과 휘장이 아직 덜 마련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공사를 시작할때 각처의 도본을 그려 치수를 재고 사람을 보내
장막과 휘장들을 만들어 오라고 하였는데, 어제까지 겨우 절반 정도
들여놓은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정은 가련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정이 가련을 불러 준비된 물품들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가정은 평소에는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가도 일단
생각을 돌리면 캐어들어가는 성미가 있었다.

가련은 바짝 긴장하여 그동안 준비해온 물품들의 목록을 보고해
올렸다.

갖가지 무늬를 놓은 비단 장막이 크고 작은 것들을 합하여 도합
백스무장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팔십장만이 준비되었다고
하였다.

휘장은 도합 이백장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제 다 채워넣었다고
하였다.

그밖에 각종 주렴과 죽렴들이 팔백장이 필요한데 절반밖에 마련되지
못했다.

그리고 걸상 씌우개와 책상보, 침대보들은 각각 일천이백장씩 모두
준비되었다.

가련의 보고를 들으며 가정과 문객들이 앞으로 나아가니 숲으로
우거진 푸른 산이 문득 시야를 가렸다.

일행이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황토로 쌓은 낮은 담이 볏짚 이엉을
인채 보일듯 말듯 이어져 있었다.

그 토담 안쪽으로 수백그루의 살구나무들이 마치 불타는 노을처럼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두칸짜리 초가집이 뽕나무 느릅나무 무궁화나무 석류나무
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나무들마다 여린 새 가지들을 뻗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두줄로 심은 또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구불구불 푸른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울타리밖 산비탈 아래에는 우물이 있고 우물위에는 두레박이 도르래에
걸려 있었다.

우물 주위에 펼쳐진 반듯반듯한 밭에는 각종 푸성귀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