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러시아 금융시장이 갑자기 마비됐을 때 서방 금융전문가들은
박수를 쳤다.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려면 이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며 고통을 극복
하고 나면 한단계 성숙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동유럽 금융계도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
하고 있다.

체제전환국 금융기관들은 한결같이 관치금융과 부정부패에 익숙해 있다.

이런 상태로는 금융국경이 무너지는 때를 대비할수도 없고 서방의 자금을
끌어들일 수도 없다.

이에 체제전환국들은 금융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 금융계는 은행간 단기자금거래가 마비돼 콜금리가 1천%까지
치솟았던 8월말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재편되고 있다.

대부분의 러시아 은행들은 종래 물가가 치솟는 틈을 이용해 정부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부동산이나 외환에 투자함으로써 손쉽게 돈을 벌었다.

그러나 올들어 정부가 강력한 경제안정책을 펼치면서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도산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러시아에는 현재 약3천개의 은행이 있으나 평균자본금이 34억루블(5억
7천억원)에 불과하다.

영세한 은행들은 대부분 부실은행들이다.

러시아 금융당국은 이런 은행들에 더이상 투기자금을 대주지 않을 방침
이다.

추바이스 부총리는 8월말 "은행의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
하면서 "은행들은 투기거래를 중단하고 기업융자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과감하게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
비해 중국은 보수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은행들의 가장 큰 문제는 부실 국영기업들에 한없이 돈을 대줘야
하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금융을 담당할 3개의 국책은행
(중국수출입은행, 국가개발은행, 농업개발은행)을 설립했으며 지난 7월에는
야심적인 은행개혁책을 발표했다.

정책금융을 신설 국책은행들에 떠넘김으로써 은행들이 효율적인 자금배분
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3개의 국책은행이 설립된 뒤에도 국영은행들은 이익이 날만한
분야에 돈을 대출하지 못하고 여전히 정책자금을 대느라 허둥대고 있다.

대출이 상부의 지시나 정실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중국정부는 3개 국책은행을 설립하고 나면 국영은행들이 상업은행 본연의
업무에 치중할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책은행 설립이전에 정책금융을 담당했던 국영은행들은 거대한
부실채권에 짓눌려 정부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로붜 벗어나 자립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증권시장 육성에서도 실수를 거듭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 증시는 91년 제1차 국영기업 민영화를 계기로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할 증권거래소도 없고 믿을만한 주가지수도 없다.

거래는 대체로 비밀리에 이뤄지며 시장의 유동성이 부족해 대량거래가
어렵다.

금년초 주식전자거래시스템 RTS가 가동되면서 사정은 다소 나아졌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늘면서 RTS가 주가를 형성하는
매체로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증시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상해와 심천에 거래소를 갖고있는 중국 증시는 지난 5년간 양적 성장
에서는 일단 성공했다.

초창기인 90년 12억3천억여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지난달에는 3백30배
인 4천억원으로 급증했고 상장기업수도 14개에서 3백62개로 늘었다.

상장을 신청해 놓은 기업도 3백여개에 달한다.

문제는 내부자거래가 횡행하는 등 거래질서가 엉망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증시를 부실 국영기업 구출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증시는 서방 투자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은 내년에는 상해 포동지구에 첨단거래시스템을 갖춘 증권거래소를
개설한다.

거래소 규모는 도쿄증권거래소의 2배에 달한다.

중국과 러시아 증시는 아직 여러모로 미흡하다.

그러나 앞으로 자국 기업들에게는 자금조달 창구로, 해외투자가들에게는
유망시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