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인] 이토 하루오 <일본 다이세키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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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은 선택에 머뭇거려서는 안됩니다.
돈벌이가 되는 사업에 바로 뛰어들수 있어야지요" 산업폐기물처리업체인
일 다이세키의 이토 하루오(이등치웅)회장이 주장하는 기업가정신이다.
"초밥집이 "되는 장사"라고 생각되면 지금까지 무엇을 경영해왔든 당장
시작할수 있어야 합니다.
어렵게 느껴지면 잘 할수 있는 사람을 찾아 협력하면 그만입니다"
주관적인 발언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
없게 된다.
이토회장이 8년간 몸담아온 장신구제조회사에서 뛰쳐나와 같은 업종의
"이토제작소"를 설립한 것은 지난 1938년. "되는 장사"였던 이사업은 이듬해
제정된 전시입법때문에 영업금지를 당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그는 전쟁이라는 시대변화에서 활로를
찾아낸다.
항공기부품을 제조하던 군지정공장의 하청업체로 나서게 된 것.
전시중이라 순조롭게 매출을 늘려갈수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1945년
공습을 받아 공장이 불타버려 또 한번의 시련을 맞는다.
아내와 올망졸망한 4명의 자식을 안고 벌이를 찾아 전전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신문에 실린 유채기름 추출기 광고가 번쩍 눈에 띄었다.
"이거 되겠는데"생각한 그는 즉시 달려갔다.
물자가 부족했던 당시는 뭔가를 제조하려고 해도 원료를 손에 넣기가
쉽지않았으나 유채씨만은 무진장 널려있었다.
기름은 날개돋친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않아 콩기름등 여러가지 기름들이 대량생산되면서
유채기름가격은 떨어져만 갔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에 굴하지않은 이토회장은 곧 새사업에 착수했다.
공업화 추진에 따른 기계기름 수요증가를 예측했던 것.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업원중에는 공업유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거래업자들
가운데서 스카우트했다.
"어느 시점에 어떤 인재가 필요한가,그리고 그사람이 신뢰가 가는
사람인가를 꿰뚫어 볼수 있어야 기업인"이라고 이토회장은 강조한다.
공업기름사업은 순조로운 첫발을 내딛고 1958년 다이세키의 모태인
대동석유화학공업이 탄생한다.
그로부터 7년후 이토회장은 네번째 "되는 사업"인 폐기물재생사업에
뛰어든다.
그당시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의 전환기에 돌입,공해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때였다.
"남들이 하지못했던 일에 손대기 위해서는 앞을 내다보는 식견과 그에
따르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발상"이 떠오르면 구체적인 "구상"단계에 들어간후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폐기물처리업의 선구자"인 이토회장은
올해 7월 다이세키의 주식을 상장했다.
80세를 넘어선 그는 일상업무 지휘는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맡기고
있지만 아직도 기업인으로서의 "발상.구상.실행"은 계속하고 있다.
현재 이토회장이 몰두하고 있는 구상은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아시아국가들
과의 협력사업에 관한 것.
그는 아시아 개도국들이 공해선진국 일본의 전철을 밟기전에 다이세키의
기술을 활용, 폐기물처리사업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동시에 다이세키의 "수익을 늘리는 절호의 기회"가 될것이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9일자).
돈벌이가 되는 사업에 바로 뛰어들수 있어야지요" 산업폐기물처리업체인
일 다이세키의 이토 하루오(이등치웅)회장이 주장하는 기업가정신이다.
"초밥집이 "되는 장사"라고 생각되면 지금까지 무엇을 경영해왔든 당장
시작할수 있어야 합니다.
어렵게 느껴지면 잘 할수 있는 사람을 찾아 협력하면 그만입니다"
주관적인 발언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
없게 된다.
이토회장이 8년간 몸담아온 장신구제조회사에서 뛰쳐나와 같은 업종의
"이토제작소"를 설립한 것은 지난 1938년. "되는 장사"였던 이사업은 이듬해
제정된 전시입법때문에 영업금지를 당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그는 전쟁이라는 시대변화에서 활로를
찾아낸다.
항공기부품을 제조하던 군지정공장의 하청업체로 나서게 된 것.
전시중이라 순조롭게 매출을 늘려갈수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1945년
공습을 받아 공장이 불타버려 또 한번의 시련을 맞는다.
아내와 올망졸망한 4명의 자식을 안고 벌이를 찾아 전전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신문에 실린 유채기름 추출기 광고가 번쩍 눈에 띄었다.
"이거 되겠는데"생각한 그는 즉시 달려갔다.
물자가 부족했던 당시는 뭔가를 제조하려고 해도 원료를 손에 넣기가
쉽지않았으나 유채씨만은 무진장 널려있었다.
기름은 날개돋친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않아 콩기름등 여러가지 기름들이 대량생산되면서
유채기름가격은 떨어져만 갔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에 굴하지않은 이토회장은 곧 새사업에 착수했다.
공업화 추진에 따른 기계기름 수요증가를 예측했던 것.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업원중에는 공업유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거래업자들
가운데서 스카우트했다.
"어느 시점에 어떤 인재가 필요한가,그리고 그사람이 신뢰가 가는
사람인가를 꿰뚫어 볼수 있어야 기업인"이라고 이토회장은 강조한다.
공업기름사업은 순조로운 첫발을 내딛고 1958년 다이세키의 모태인
대동석유화학공업이 탄생한다.
그로부터 7년후 이토회장은 네번째 "되는 사업"인 폐기물재생사업에
뛰어든다.
그당시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의 전환기에 돌입,공해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때였다.
"남들이 하지못했던 일에 손대기 위해서는 앞을 내다보는 식견과 그에
따르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발상"이 떠오르면 구체적인 "구상"단계에 들어간후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폐기물처리업의 선구자"인 이토회장은
올해 7월 다이세키의 주식을 상장했다.
80세를 넘어선 그는 일상업무 지휘는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맡기고
있지만 아직도 기업인으로서의 "발상.구상.실행"은 계속하고 있다.
현재 이토회장이 몰두하고 있는 구상은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아시아국가들
과의 협력사업에 관한 것.
그는 아시아 개도국들이 공해선진국 일본의 전철을 밟기전에 다이세키의
기술을 활용, 폐기물처리사업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동시에 다이세키의 "수익을 늘리는 절호의 기회"가 될것이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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