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따라 유난히 서럽게 들리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귀뚜라미의 낮은
중얼거림으로 바뀌었다.

그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든 일에 때가 있듯이 곤충들의 울음도 때가 있다.

매미가 설치는 여름이 있나 하면 귀뚜라미가 제왕이 되는 가을이 있다.

그러나 계절과 관계없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는 가장 왕성한 곤충은
바퀴벌레다.

바퀴벌레가 해로운 벌레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선보다는 악의
뿌리가 더 깊지 않을까 싶다.

선의 잎사귀와 줄기와 뿌리는 어쩌면 그리도 쉽게 뽑혀지는지. 그러나
악의 이파리들과 줄기와 뿌리는 그 어떤 원자폭탄에도 죽지 않고 면면이
살아남아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어차피 우리는 모든 악덕들과 함께 동거하지 않을수 없다.

알면서도 눈감고 더러워서 피하고 무서워서 숨어가며.하나의 해충을
제거하면 잠시의 위장된 평화뒤엔 그보다 더 센 저항력을 지닌 슈퍼해충들이
나타난다.

살충제의 강도에 비례하여 점점 더 센 해충들이 도래한다.

어쩌면 병도 마찬가지이고 악의 경우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에는 폐렴만 걸려도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에는 폐결핵이 난치병이었고 요즘엔 에이즈가 가장 무서운 병이다.

현대에 또다시 출현한 슈퍼결핵은 과거의 것보다 몇십배 강한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도 마찬가지이고, 핵폭탄의 경우도 같다.

히로시마 정도가 아니라 전 일본을 날려버릴수 있는, 아니 전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강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생각해보라.

프랑스가 보유한 핵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다섯배 성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사실 언제 어디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고와 범죄와 폭력의 강도는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강력해진다.

또한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엄청난 지진같은 천재지변 앞에서는
인간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어쩌면 "악"보다 더 강한 것은 "하늘의 뜻"일지 모른다.

문득 신문에서 읽은 어느 종교인의 칼럼 한구절이 떠오른다.

남아감별법을 이용하여 딸이면 낙태를 시키는 세태에 관한 경고를 주제로
한 칼럼이었다.

남자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시절엔 늘 큰 전쟁이 발발했다고 한다.

그럴듯한 가정이다.

요즘 국민학교에서는 여아들의 숫자가 모자라 남자아이들끼리 짝을 이루는
경우도 드물지않다고 전해진다.

20세기말의 호모증가현상과 에이즈시대의 출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논지였다.

결국 하늘의 섭리를 어기고 아들을 가려낳는 세태로 인한 지구의 변고들을
생각하면 무섭기 그지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전쟁이란 남자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미친 집권자들의 지휘아래 죄없는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죽어가는 광염소나타같은 것이 아닐까.

신의 섭리를 어기는 일이 어디 그 뿐이랴.평화시에도 우리는 늘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다리와 건물과 매연과 소음속에서 우리가 불러대는
노래는 아무래도 매미나 귀뚜라미의 합창이 아니라 끈질기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바퀴벌레들의 아우성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의 숫자가 2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또한 전쟁이 아닐수 없다.

이 무섭고 미친 세상을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만드는 길은 "사랑"이라고들
한는데 그 많던 우리들의 사랑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