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역사는 기구하다.

우리가 보통 아일랜드라고 말할 때 그것은 49년에 영국에서 완전 독립한
아일랜드공화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아일랜드문제"라면 영국령인 얼스터지방을
중심으로 한 북아일랜드를 가리킨다.

북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간의 종교적 갈등은 몇차례의 폭동과
유혈사태를 빚었었고 아일랜드공화군(IRA)과 영국과의 휴전은 1년이 지났
지만 IRA는 아직도 무장해제를 않고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수상자 셰이머스 헤이니는 북아일랜드 데리지역 모스본의
한 농가에서 패트력헤이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아일랜드 시인으로서는 예이츠(23년)에 이어 2번째, 아일랜드인
으로서는 버너드 쇼(25년)와 사뮈엘 베케트(69년)에 이어 4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 셈이다.

헤이니는 펭귄사가 출판한 "현대 영국 시선"에서 최근의 가장 훌륭한
영국시인이라고 지칭하자 "공개서한"에서 자신은 아일랜드 시인임을
천명할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에 민감하다.

아일랜드의 지형은 기복이 적은 평야지대이고 호소가 많으며 주민은
고립 주택이나 소수의 농가가 산재하는 작은 마을에 거주한다.

그들은 비교적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있어 "옛 유럽"이 오랫동안 보존되어
있는 셈이다.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이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일어났는데 이
운동을 문학운동으로 결실시킨 대표적 작가는 예이츠와 J M싱등이라 할수
있다.

그들은 고대 아일랜드전설과 민화의 회복,민족감정의 고양등을 지향했었다.

데리지역의 소수파인 가콜릭가정에서 태어난 셰이머스 헤이니는 독립에의
열망이 가득찬 환경속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아야 했던 모순된 현실에 내적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의 이 같은 내면적 갈등이 그의 시세계의 중심이자 상상력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초기에는 유년기의 기억을 돌이키는 서정성있는 작품을 썼었고
중기에는 아일랜드의 역사나 신화 언어 정치 경제 종교등에 관련된
아일랜드인의 삶을 담았다.

그는 후기시인 "사물의 관찰"에 이르러 사물을 폭넓게 바라보면서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철학적 모습을 보였다.

청주대 홍성숙교수가 그의 시세계를 "지역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풀이한 것도 이같은 측면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다.

홍교수는 헤이니의 문학은 "식민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에게 공감과 각성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도 헤이니같은 작가가 출현할 것이 기다려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