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자동차 협상타결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또한번의 실망과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우리측 협상단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수
밖에 없는 현실에 국민들은 좌절감과 불안감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미국과의 통상협상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

한미간의 통상마찰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협상을 벌일때 마다 우리는 이번과 같은 비슷한 결과를
경험할 것이다.

한미간의 통상에 관한한 그동안 통상협상은 협상이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얼마나 수용해주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원래 협상이란 주고 받아야만 하는 것인데 그동안 우리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통상대책의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통상대책에 근본적 결함이란 전문통상기구의 부재와 대응논리를 가리킨다.

미국은 대통령직속하에 무역문제를 전담하는 무역대표부(USTR)를 두고
있다.

USTR는 세계최고의 전문가와 이론가를 두고 수출전략을 세우며,세계막강의
통상법 301조를 무기로 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대외무역 문제를 해결한다.

USTR는 다른 경제전략기구인 경제자문회의(CEA)와 국가경제위원회(NEC)와
더불어 장기경제전략을 세우며 국가의 중대한 경제현안들을 이들 기구들이
사전 협의하고 그에 대한 대응전략을 만든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경제의 장기발전전략을 짜는 정부기구는 없으며,
장기통상전략을 세우는 무역전담기구도 없다.

재경원이나 통산부는 경제일선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돌보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통상전략과 대응책을 사전에 마련하기
에는 절대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간의 통상협상결과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오기를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통상마찰때마다 내세운 대응논리는 큰 설득력이 없었다.

그 결과 우리국민은 정부에 대한 무력감을 쓸데없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이것은 또한 우리 국민의 반미감정을 고조시키는데 기여를
할뿐이었다.

이같은 취약한 대응논리의 중요한 예가 UR 쌀시장 개방불가에 사용한
식량안보론이었다.

우리가 만일 전쟁중에 해안이 봉쇄당하면 쌀수입이 안되어 우리의 안보는
크게 위협받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사실은 외국의 공급이 없으면 쌀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음식을
만들수 없는 상황이 먼저 오기때문에 식량안보론은 간단히 무너져 내렸다.

이번 자동차협상때도 마찬가지다.

조세주권주의를 내세워 미국측의 자동차세 인하요구를 거절했지만 결국은
대형자동차세율인하로 우리의 조세주권주의는 일부 침해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조세주권주의에 의거한 우리측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이미 미국과
담배협상에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조세주권주의를 내세워 자동차개방을 막아
보려는 시도는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현명한 협상전략이라고는 볼수없다.

우리정부는 우리측의 통상협상방법이 현명하지 못함으로써 초래되는
반작용과 후유증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달리 내세울 만한 논리가 없었던 것이기도 했고 또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 정부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의미는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계속되는 우리정부의 굴욕적인 양보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못할 뿐만아니라 정부능력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나아가서 결코
우리에게 이롭지 못한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우리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미국은 야속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전체시장에 대해 미국은 적지않은 흑자를 내면서도 통상법
슈퍼301조적용을 위협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의 추가개방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우리와는 판이하다.

과거 미국은 15년간 누적되는 대외무역적자로 인한 실업과 인플레의
증가를 우려하며 또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제조업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적자가 국내산업의 경쟁력약화에 연유한 것이 아니라
외국의 불공정한 경쟁행위와 부당한 시장폐쇄에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진국은 물론이고 후진국에 대해서도 무리한 요구를
서슴없이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상무부는 최근에 한국을 비롯하여 16개 중진국을 거대신흥시장으로
선정하고 이들 시장에 대한 집중공세를 펴나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과의 시각의 차가 좁혀지는게 필요하며 또한 여기에는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통상정책,특히 대미통상대책을 새로운 틀속에서
다시 짜야한다.

우선 우리는 무역만 전담하는 미국의 USTR에 해당하는 무역전담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국가전략계획과 복잡한 장기통상전략을 구상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통상문제를 해결할수 있어야 한다.

둘째 통상협상을 위한 대웅논리의 개발에 있어서 보다 신중해야한다.

섣불리 내세운 대웅논리가 설득력을 잃게 되면 국민의 실망과 정부불신,
나아가서 반미감정은 더욱 높아진다.

통상현안을 우리입장으로만 본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입장에서도 볼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듯이 문화의
폐쇄성과 시장의 폐쇄성때문에 우리의 국제화 수준은 41개국 가운데서
34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은적이 있다.

그리고 그동안 무역으로 이만큼 커온 우리경제가 계속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국민들도 더불어 산다는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우리의 세계화를
더욱 추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