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을 바라보면서 고향 회문산을 생각하는 한무리의 중년들이 사심없이
가끔 어울리고 의지하며, 자칫 각박하기 쉬운 일상생활에 윤을 내고있다.

사회생활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몇개의 모임에 참여하지만 고향
고등학교 친구모임에 갔다오면 웬지 맛갈스럽고 살맛이 난다.

누구에게나 고교시절의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여년이
지난후에도 그 추억을 얘기하고 아직 체력이 왕성할때 그 추억을 재현해
볼수있는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전에 빨치산 얘기를 다룬 "남부군"이라는 소설이 유명했었는데
첫머리의 무대가 되었던 회문산을 오르내리던 고등학교때의 추억을
재현해보고자 우리는 40세가 되는 새해아침(1994)년에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도 했다.

섣달 그믐날 저녁 백무동을 출발하여 교교한 달빛아래 줄지은 한무리의
배낭부대는 45년전 지리산을 헤메던 빨치산 모습이었고 필자는 그렇게
행동하려고 일부러 애썼다.

이튿날 새해아침 치고는 10년만의 장관이라는 "대일출"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우정과 발전과 봉사등 생각나는 모든 좋은 것들을 이해 기도했다.

올봄에는 그동안 뵙지못했던 은사님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전주에서
가졌다.

이미 백발이신 그분들과의 만남에서 반가움과 고마음과 일종의 연민
이외에 참으로 인생에서 좋은 인연은 많을수록 좋겠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작년 반포국민학교에서의 체육대회는 어떠했는가?

마음만 앞서는 축구시합은 그렇다 치더라도 족구시합 정도는 아직
공격과 방어가 정교(?)한데 놀랐고 특히 지방에 있는 친구들의 발군의
실력에는 무언가 생각케하는 점이 있었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에서 소년기를 보낸후 70년대 초반에 각자의
생활터전으로 흩어진 우리들은 개교 50주면과 졸업 20주년을 겸하여
치러진 행사에서 대부분 평소 연락없이 지내오던 친구들간에 한꺼번에
많은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때 학창시절을 회고하며 우리에게 특강을 해주셨던 양효원 선생님께서
몇년후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에 우리는 망연함과 함께 그때마다 단체로
선생님을 모셨기에 다행이라고 자위했다.

이 모임의 주역에는 최진(교보생명 부장), 양기섭(동아일보 차장),
변귀환(한국통신 차장), 최병철(농림수산부), 김상우(순창군청)등이
있었으며 필자는 공연스레(?) 회장만 되었다.

오늘도 총무로부터 2개월마다 모이는 정기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사업얘기는 다른 모임에서 하기로 하고 누구머리가 더 희었는지 또는
더 빠졌는지 이러쿵 저러쿵 핏대도 올렸다가 가끔은 기특하게 봉사정신도
상기시키며(올해부터) 순창제일고등학교 28회 동기생들은 서로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