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가 자민.사회 양당을 주축으로 운영됐던 "55년체제"시대에선
자민당총재가 곧 국무총리라는 등식이 성립됐었다.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안정 과반수세력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자민당 총재가 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93년7월에 "55년체제"가 붕괴되자 자민당은 원내 제1당이기는
하지만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자민당총재=총리"가 될수 없었다.

자민당은 한때 야당을 거쳐 지금은 사회당 무라야마총리 아래 연립정권에
부총리와 각료로 참여하고 있다.

자민당이 내년 총선에서 원내 안정세력을 얻어 "옛날의 영화"를
되찾으려는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자민당은 야당시절 정치에 비교적 때가 덜 묻었고 "비둘기"파라는
이미지가 있는 고노를 총재로 선출했다.

아마도 고노총재였기 때문에 자민당이 사회당 사키가케와 함께 연립정권을
수립할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자민당은 고노체제하의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에서 패배했다.

여기서 자민당내 "매"파를 중심으로 고노총재란 "얼굴"로선 내년에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 이길수 없다는 반 고노기운이 싹텄다.

"매"파를 중심으로 초.재선의원들이 새 총재후보로 추대한 인물이 국민의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 류타로통산성장관이다.

초.재선의원은 그들의 선거구 기반이 약하고 특히 정치개혁으로 실시되는
소선거구제 선거에서 당선되려면 하시모토의 국민적 인기에 편승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민당내 대세가 "하시모토 총재"로 굳어지자 지난 8월28일 고노 현총재가
돌연 총재출마를 포기했다.

그러자 하시모토의 총재 무투표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출마한 인물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우정성장관이다.

하시모토나 고이즈미나 모두 게이오대 출신으로 콧대가 세고 "정책통"이란
평들이다.

이들의 총재경선이 자민당의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됐을 것이란 분석
이지만 두사람 모두 당내 파벌의 장을 지내지 못했다.

하시모토 자민당총재의 출현이 일본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불투명 하다.

다만 지난 8월21일 총재선거 출마를 선언했을때 그가 자민당의 단독정권,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보수야당인 신진당과의 "보보연합"모색등을
내세웠던 것이 주목된다.

일본정국은 자민당총재의 개선으로 한동안 유동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