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만능예인으로 뭇남성을 치마폭에 휘감았던 황진이가 창극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국립창극단(단장 강한영)이 20~29일 국립극장 소극장무대에 올리는 창극
"황진이"(각색.연출 정일성)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불리는 황진이는 빼어난 미모와
함께 시.서.음률에 두루 능통했던 절세가인.

조선 중종때 양반가의 서녀로 태어난 황진이는 15세무렵 동네총각이 그녀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자 양반의 신분을 버리고 기생이 된다.

이후 출중한 용모와 뛰어난 시재로 문인.학자들을 매혹시키며 숱한 일화들
을 남기게 된다.

당시 생불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지조가
굳기로 소문난 왕실종친 벽계수를 시조 한수로 무릎꿇게 한다.

또한 대제학 소양곡, 당대제일의 국창 이사종등과의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가하면 절개를 꺾지 못한 서경덕과는 사제관계를 맺는다.

한남자의 여인이기를 거부했던 만인의 연인 황진이.

그녀는 이처럼 당대의 일류명사들과 정을 나누며 절대자유를 추구한 희대의
여걸이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속박에서 몸부림치던 외로운 여인이었다.

창극 "황진이"는 90년 김봉호작.김홍승연출로 초연됐던 작품으로 "박씨전"
"배비장전"등과 같이 고전스토리에 판소리를 작창한 창작창극.

이번공연에서는 황진이의 시조.가곡등 정가를 판소리화하여 창극의 새로운
어법을 시도하는 한편 초연작품에 비해 무대장치나 배경등 연극적요소를
대폭 축소했다.

아울러 고전창극의 입체창형태를 살려 소리꾼의 아니리(소리대사)와 발림
(연기)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해간다.

8가지 일화를 독립된 단막형식으로 구성, 황진이의 생애와 인간적 고뇌를
그려간다.

처음으로 창극연출을 맡은 정일성씨는 60년대 초기 소극장운동의 1세대로
"번제의 시간" "남한산성" "출세기"등으로 낯익은 연극연출가.

정씨는 이작품에서 시대적 속박을 초월해 자신의 삶을 개척한 시인 황진이
의 붉꽃같은 삶을 그린다.

정씨는 고전작품을 서구적 감각으로 처리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서구지향적
의식과는 다른 우리자신의 현대적 감각으로 한국적인 음악극을 선보이겠다"
고 말했다.

명창 안숙선씨(46.중요무형문화재23호 가야금병창 보유자후보)와 김영자씨
(44.중요무형문화재5호 수궁가 " )가 황진이역을 맡아 애절한 노래가락을
들려주고 황진이의 삶을 이해하는 임백호역에는 창극의 차세대주역으로
떠오르는 왕기석씨가 출연한다.

공연시간 평일 오후7시30분, 토.일 오후4시. 274-1171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