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중경삼림"은 고답적인 이 명제를 재삼 확인해준다.

홍콩의 젊은감독 왕가위는 "열혈남아"(88년) "아비정전"(90년)에 이은
3번째작품 "중경삼림"을 통해 특유의 탐미적인 영상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는 사랑과 실연을 다룬 2편의 스토리가 연이어 전개되는 옴니버스식
으로 이뤄져있다.

실연한 경찰 금성무와 배신한 마약밀매원을 직접 제거한 임청하가
도시의 어느 바에서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 얘기가 첫번째 스토리.

두번째 얘기에는 역시 떠나버린 애인을 못잊는 경찰 양조위와 그를
사랑하게된 패스트푸드점 종업원 왕정문이 등장한다.

양조위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간왕정문이 옛애인의 자취를 하나씩
없애며 자신의 사랑을 일구는 과정을 담았다.

포맷은 확실히 신세대식 사랑얘기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줄거리는 그리 중요하지않다.

단지 줄거리를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강조될 뿐이다.

때문에 왕조위감독은 배우들에 의해 영화가 장악되는 것을 거부했다.

유명 홍콩배우들이 출연했고 멜러적 요소가 상당부분 포함됐지만
통속적인 사랑영화로 보이지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신 왕조위는 스피디하고 1회적인 신세대의 감각과 속성을 부각시킨다.

동시에 이들의 공허와 고독에 주목한다.

핸디카메라로 잡은 빠른 화면전개,정신을 차릴수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California Dreaming" 연주와 노래를 통해 이러한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여기에 중국반환을 눈앞에둔 홍콩 밤거리의 허무가 더해져 지향점없는
포스트모던시대의 젊은 군상들이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확실히 너무많은 목표점때문에 표류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우리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영화의 배경인 홍콩과 다른 점은 있다면 100년간 유지돼왔던
체제가 어느 한순간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불안감을 체험하지
못했을 뿐.

아무튼 이 감각적이고 색다른 영화에 대한 반응은 영화전개 만큼이나
혼란스럽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 2일 씨네하우스/코아아트홀 개봉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