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시험을 해보지 않았어도 이 구슬은 틀림없이 영험이 있을
것이오"

북정왕은 통령보옥을 새삼 들여다보고 나서 오색술이 달린 끈을
차곡차곡 포개어 보옥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보옥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눈 후에 가정에게 말했다.

"어린 봉황의 울음소리가 늙은 봉황의 울음소리보다 더 맑을 것입니다
(추봉청어노봉성)"

가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황공하다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보옥이 아버지 가정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 애지중지하면 버릇이
없어지고 공부도 등한히 하기 쉬우므로 좀 더 엄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아직 스무살도 안된 북정왕이 어른스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가정은 자기는 보옥을 엄하게 대하는데 보옥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북정왕이 염려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감싸고 돈다고 생각하였다.

"만일 아드님이 집에서 공부를 등한히 한다든지 하면 언제든지 저희
집으로 보내도 좋습니다.

나는 비록 재주가 없으나 내로라 하는 여러 명사들이 저희 집에
많이 드나드니, 아드님도 자주 와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문에도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아이구, 말씀만 들어도 감사하옵니다"

가정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격해하였다.

보옥도 가슴 벅찬 가운데 그 여러 명사들을 하루속히 만나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북정왕이 손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벗기더니 그것을 보옥에게 건네
주었다.

"오늘 처음 만나 창졸간에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일전에 황제
폐하께서 나에게 하사하신 이 척령향 염주를 선물로 주겠소"

척령향이라면 향이 좋기로 이름난 고급 나무가 아닌가.

보옥은 송구스러워하며 그 염주를 두 손으로 받아 얼른 몸을 돌려
아버지 가정에게 드렸다.

잠깐 손에 들었는데도 보옥의 두 손에서는 척령향나무 향내가 물씬
배어든 듯하였다.

아, 북정왕은 이 척령향처럼 향기로운 분이시구나.

보옥은 사람의 인품에도 향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분이었다.

이때 가진과 가사가 다가와서 북정왕에게 여쭈었다.

"이제 고단하실 텐데 가마를 돌려 관소로 돌아가시지요"

이만큼이라도 장례식에 참석해주신 것이 황공스러워 하는 말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