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은 진가경의 발인 날짜가 가까워오자 길흉의 점괘를 볼줄 아는
음양사 관리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철함사로 가서 진가경의 영구가
안치될 장소를 돌아보았다.

철함사는 오래전에 녕국부와 영국부에서 지은 절로서 가씨가문에서
죽은 자들의 영구를 어느때라도 맡길수 있는 곳이었다.

희봉을 사모하다가 상사병에 걸려 죽어간 가서의 영구도 철함사에
맡겨져있는 것이었다.

가진은 철함사 주지 색공을 만나 진가경의 영구를 안치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의논을 하고 당부를 하였다.

색공이라는 이름은 색즉시공이라는 반야심경의 문구에서 따온 것이긴
하지만, 어떻게 들으면 색만 밝히는 어른이라는 뜻인 색공으로 들리기도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색공은 공기맑은 곳에서 산에서 나는 것들만 먹어서
그런지 혈색이 좋고 기가 살아있어 정력도 왕성할것 같았다.

이제 점점 기력이 쇠하고 있는 가진으로서는 그런 색공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영구를 맞이하는데 사용할 제구들은 새것으로 장만하고 차릴 음식들은
아주 신선한 것들로 준비하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름난 스님들을 많이 초청하여 영구를 맞이하고 안치할때
독경을 우렁차게 외게하시오"

"이미 부탁을 다 드려놓았으니 그날 독경소리가 산을 흔들만큼 크게
울릴 것입니다"

"영구를 따라올 사람들이 묵을 방과 그들을 대접할 음식들도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하시오"

이렇게 세세하게 점검을 한 가진은 몸이 피로해져 쉬고 싶어졌다.

색공은 가진이 저녁도 못들고 주무실까 싶어 서둘러 저녁밥상을
차려왔으니 가진은 입맛이 없어 그대로 밥상을 물리었다.

그리고 곧 쓰러져 잠이 들었다.

진가경이 아름다운 자태로 철함사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독려하며 음식들을 차리고 있었다.

가진이 진가경에게 다가가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시아버님 영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며출후에 여기 철함사로 시아버님의 영구가 들어올 거거든요"

가진은 깜짝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진가경의 영구를 안치할 준비를 하기위해 철함사에 들른 가진이
아니던가.

상황이 거꾸로 되어도 보통 거꾸로 된것이 아니었다.

그래 가진이 따져 물으려 하였으나, 그럴 여유도 주지않고 진가경이
보일듯 말듯 미소를 지으며 철함사 대웅전뒤로 돌아갔다.

가진이 진가경을 따라가보고 싶었으나 그쪽으로 돌아가면 영영 세상으로
나오지 못할것 같아 멈칫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