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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사는 미국의 경제석학 폴 크루그먼교수(스탠포드대)를 한국
산업연구원(KIET)과 공동으로 초청, 22일 서울 호텔 롯데에서 광복 5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기에 앞서 이규억KIET원장과의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크루그먼교수는 대외무역에 있어 정부의 일정한 개입을 전제로 하는
"전략적 무역정책이론(Strategic Trade Policy)"을 주창, 각국의 보호무역
주의에 긍정적 논거를 제공한 대표적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21일 호텔 롯데에서 가진 대담에서 크루그먼교수는 그러나 "국제적 무역
구조가 복잡 다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정부 개입은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며 미.일등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
했다.

그는 또 "WTO(세계무역기구)체제가 출범하면서 한동안 기승을 부렸던
지역블록현상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한국은 보다 명료하고
공정한 무역을 통해 선진국 진입시기를 앞당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대담 내용을 간추린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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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

<>폴 크루그먼교수 : * 74년 미 예일대 졸업
* 77년 MIT 경제학 박사
* 80년 예일대 조교수
* 82~83년 미국대통령 경제자문위원
* 84~94년 MIT 교수
* 91년 존 베이트 클라크상 수상
* 현 스탠퍼드대 교수

<>이규억 원장 :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뉴욕대 경제학 석/박사
*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 현 산업연구원(KIET) 원장
* ''법경제연구''(95), ''기업결합''(93) 등 저서

<>이규억 KIET원장=크루그먼교수께서는 일정한 보호무역주의는 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증대에도 기여한다는 "전략적 무역정책이론"을 편 바
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이 이론을 원용해서 한국 일본 같은 주요 무역대상국들에
강도높은 통상공세를 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요.

그런데 교수는 최근 클린턴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비판하는등
자신의 이론체계를 수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견해를 바꾼 데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예컨대 미국
정부가 지나치게 통상마찰을 일으킬 경우 국제무역의 후퇴를 가져와 전체적
으로 미국에도 마이너스 효과를 초래할 뿐이라던가...

<>폴 크루그먼 미스탠포드대 교수=저 자신의 학문적 견해는 과거나 지금
이나 하나도 달라진게 없습니다.

애당초 제가 제시했던 전략적 무역정책이론은 국가간의 무역정책에서 비롯
되는 각종 파급 효과를 학문적.이론적으로 구명해 보자는 것이었을 뿐이지,
어떤 특정한 의도를 바탕에 깐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순수한 이론을 클린턴행정부가 실제 정책으로 응용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클린턴행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로라
타이슨이나 레스터 서로우 같은 학자들이 제 이론을 조금 각색한 모양인데,
제가 보기에는 조잡한 중상주의와 별로 다를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정책에 저의 "전략적 무역정책이론"이라는 이름을 빌리고 있으니
비판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원장=어쨌거나 현재의 미국정부는 대외 무역에 있어서 일정한 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전략적 무역정책에서 정부 개입이 합리화되는 부문은 결국 첨단 산업인데
이 분야에서 각국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게 되면 결국 거센 국제적 무역전쟁
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한국의 고속전철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독일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적도 있지 않습니까.

<>크루그먼교수=그럴 가능성은 있겠지요. 그러나 한가지 주목할 것은 요즘
각국간에 벌어지고 있는 국지적 무역전쟁이 결코 최첨단 산업분야만을 대상
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일본간의 최근 무역마찰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자동차와 그 부품
이라는 중간 기술(mid-tech)산업이 대상이지 슈퍼 컴퓨터같은 첨단 산업
에서는 별다른 마찰이 없는 상태 아닙니까.

사실 국가간 무역마찰은 대상이 되는 분야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높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산업의 첨단 여부가 주요한 결정 변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컨대 석유화학이나 담배같은 업종이 첨단산업보다도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미간에 담배를 둘러싼 무역마찰이 첨예한 것도 그런 이유때문일 겝니다.

<>이원장=첨단산업 우선원칙이 됐건, 고부가산업 우선원칙이 됐건 간에
미국내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특히 캘더 같은 경제학자는 산업발전의 근본 원인을 "누적 요인(cumulative
causation)"으로 풀어 설명하면서 클린턴행정부의 보호무역을 더욱 부추기고
있지 않습니까.

성공은 더 큰 성공을 낳고, 실패는 스스로 지속되기 때문에 유치산업의
보호와 지원은 산업생산의 선순환에 시동을 거는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크루그먼교수=저는 캘더의 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는
1~2개 산업등 적용 범위가 적을 때라면 몰라도 요즘처럼 산업과 경제범위가
방대한 상황에서는 별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봅니다.

<>이원장=그럼에도 클린턴행정부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대상이 자동차 반도체 금융 농산물 등 특정 산업에
집중되고 있고요.

미국의 이런 통상전략을 전략적 무역정책의 실시라고 보지는 않습니까.

<>크루그먼교수=미국정부가 동아시아 국가들에 가하고 있는 시장개방
압력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명분론상의 측면이고, 또다른 하나는 그런 개방 요구를 통해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실질적 효과를 계산한 측면일 것입니다.

명분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개방 요구는 하등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일본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무역관행이 불공정하다던가, 시장이 여전히
폐쇄적이라는 점은 굳이 미국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국의 대일통상 압력이 현실적으로
무슨 대단한 이득을 가져올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일본이 미국의 압력을 전면 수용해 시장을 모두 다
개방한다고 칩시다.

거기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이익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란 얘깁니다.
도리어 일본의 전면 시장개방이 세계 경제에 감당키 힘든 파급효과를 가져
오는등 리스크가 더 클 것입니다.

<>이원장=미국의 대한통상 압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까.

<>크루그먼교수=한국의 경우에 대해선 뭐라 말할 수 있을만큼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본을 위시한 동아시아국가들에 가하고 있는 미국의 통상공세에서
의외로 한국이 최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클린턴행정부 주변에 포진해있는 (중상주의적 보호무역이론으로 무장된)
수정주의자들이 보는 시각은 "일본은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한국은
불투명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이거든요.

<<< 계 속 ...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