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고 만류하였다.
그제서야 희봉이 간신히 울음을 멈추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요, 입술 주위에는 침과 거품이 새어나와 있었다.
"찻물로 입 안을 가시지요"
내왕의 아내가 희봉에게 차를 권하였다.
희봉은 얼굴을 수건으로 훔쳐 화장을 고치며 찻물로 입 안을 가시고는
일상적인 업무를 보기 위해 결연히 일어나 포하청으로 건너갔다.
그때 영전에 있던 중들은 지옥문을 여는 파옥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지옥문을 밀치고 들어간 중들은 등불로 망자를 비추면서 염라대왕을
뵙고, 모든 귀신들을 가두고는 지장왕에게 부탁하여 망자가 건너가도록
금다리를 놓게 하였다.
그 금다리 위로는 무수한 명정들이 지나가게 하였다.
도사들은 삼청, 즉 도교의 삼신인 원시천존과 태상도군과 태상노군을
배알하고 옥황상제 앞에 엎드려 상주문을 올렸다.
또 한 무리의 선승들은 향을 피우고 경문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
열세명의 여승들은 비단 장삼에 붉은 신을 신고 영전에서 주문을
외우며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십명의 중들과 도사들이 자기들의 의식에 따라 망자를
저승에 편히 모시려고 재를 올리니 집안이 온통 시끌벅적하였다.
포하청으로 건너온 희봉은 먼저 하인 명부를 가지고 직무에 따라
한사람 한사람 점고를 해보았다.
그런데 친척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희봉이 당장 데려오라 호령을 하여 그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바로 너로구나. 조금 고참이라고 내말을 우습게 여기는 모양이군"
희봉이 턱을 약간 올려 냉소를 띠며 말했다.
"아닙니다. 마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다니요.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늦은 적이 없는데, 오늘 새벽에 잠이 깨었다가
너무 이르다 싶어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는 것이 그만 이렇게
늦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오늘같이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에 말입니다.
제발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그런 식으로 변명하면, 오늘은 이 사람이 이러저러해서 늦었다고
그러고, 내일은 저 사람이 이러저러해서 늦었다고 그럴 거란 말이야.
그런면 나중에는 제 시각에 나올 사람이 어디 있겠어? 오늘 내가 너를
용서해주면 계속해서 그런 일이 되풀이될 테니까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너에게 벌을 내릴 수밖에 없어.
여봐라, 이 자에게 곤장 스무대를 내리도록 하여라"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