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컨트리클럽 남코스 9번홀은 420야드정도의 거리에 페어웨이 중간에
워터해저드가 있어서 상당히 공략하기 어려운 홀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워터해저드까지의 거리는 240여야드가 되어 플레이어
라면 누구나 티샷을 함에 있어서 클럽선택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홀이기도 하다.

더욱이 티샷이 물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짧은 클럽을 잡을 경우에는
그린까지의 거리가 많이 남게 되어 투온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며칠전 그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행중 꽤 장타자인 L씨가 클럽선택을 고민하였다.

드라이버를 잡을 경우 틀림없이 워터해저드에 들어 갈 것 같다면서
아이언을 잡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일행중 한명이 드라이버를 짧게 잡고 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거들었다.

어드바이스의 금지규칙을 어기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임을
전제로 하고, 필자에게 이런 경우에 어떻게 공략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흔히 법의 이념은 정의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정의란 무엇이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여러가지 견해 가운데 로마시대의 법학자인
울피아누스라는 사람의 정의론을 좋아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란 각자가 자기 몫을 정당하게 누리게 되는
사회인 것이다.

또한 그런 사회에서는 각자가 자기의 정당한 몫을 누리기 위해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하여야 함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필자가 이런 정의론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논어의
글귀가 하나 있다.

즉 제자인 안연으로부터 정치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공자가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애비는 애비답게 그리고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가의 할일이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골프규칙에 따르면 골퍼는 라운드 도중 클럽의 종류를 불문하고
14개이하의 클럽을 가지고 라운드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다.

그리고 통상 퍼티 하나, 우드 3개, 그리고 아홉개의 아이언을 가지고
다니게 된다.

또한 골퍼가 가지고 있는 클럽은 저마다 비거리가 다르고 사용목적이
정하여져 있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달리 사용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골퍼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거리의 조정을 위해 굳이 동일한
클럽을 가지고 스윙의 크기를 조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골프역사를 보자면 19세기 말엽의 영국에서는 5번아이언으로 수많은
종류의 샷을 할 수 있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골프채가 발달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스윙은 풀스윙을 함이 가장 안전하고 쉬운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클럽의 선택은 우선 비거리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클럽마다 비거리가 일정하므로 어쩌면 골프에 있어서는 클럽마다
제 역할을 하도록 함이 골프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정의로운 사회가 우리의 이상이라면 그곳에서는 사람마다
제 역할을 잘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골프에 있어서도 각 클럽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함이 골퍼의 정치가로서의 역할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