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상사 근무자들 사이에는 요즘 "싱글"
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물론 골프얘기가 아니다.

멕시코시장에서 판매목표액의 몇%를 달성했는지를 나타내는 목표대비실적률
이 "한자리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주)대우의 이영렬멕시코법인대표는 "지난해 타이어 2천만달러, 철강
2천만달러등 4천만달러어치의 한국상품을 멕시코시장에 판매했으나 올해
들어서는 판매실적이 사실상 전무"라고 말했다.

페소화폭락으로 한국상품가격이 두배로 올라 멕시코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직물과 신발등을 3백만달러어치 판매했던 (주)쌍용의 김태환멕시코
지사장도 "올해들어 한국상품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판매
실적이 너무 부진해 본사에 어떻게 보고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이다.

건설중장비와 기계설비 조선분야등 중공업분야도 판매부진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종합상사의 이경희멕시코지사장은 "지난해 주문을 받은 것을 제외할
경우 올해 중장비판매실적은 제로"라고 말했다.

멕시코정부의 사회간접자본투자와 기업의 시설투자등이 올들어 대부분
연기된 때문이다.

한국상사맨들은 한결같이 페소화폭락으로 멕시코내수시장에서 우리물건을
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한국상품수출촉진을 본업으로 삼고있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멕시코무역관조차 "멕시코인들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며 한국
무역사절단의 멕시코출장을 자제하도록 본사에 요청해 놓고 있을 정도다.

멕시코주재 한국상사들은 페소화폭락이후 멕시코내수시장판로가 막혀버리자
다른쪽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멕시코산 제품을 국내로 수입하거나 3국간 거래를
개척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대우는 원유 석유화학제품 시멘트 면화등 멕시코제품을 한국으로
보내거나 제3국에 판매하는 중개무역을 추진하고 있다.

(주)쌍용도 비철금속제품과 국영석유공사(PEMEX)의 화학제품을 인도등으로
내보내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삼성물산 LG상사등도 새로운 거래선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회사는 그러나 페소화폭락이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페소화폭락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쟁력있는 멕시코상품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중개무역을 추진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상품판매라는 한가지 영업만으로는 더이상 살아남기가 불가능
하다는 생각만큼은 상사들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멕시코의 페소화폭락은 멕시코주재 한국상사들의 영업패턴을 바꿔 놓은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