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투수가 던지는 공의 속도는 시속 1백30km안팎, 고속도로에서의
자동차속도는 평균 1백20km, 건강한 남자의 재채기속도는 시속 3백20km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캉스를 떠나는 샐러리맨들의 휴가속도는 얼마쯤 될까
궁금해진다.

신문을 들춰보면 각 여행사마다 전면광고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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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귀중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그것은
배급되어야 한다"던 희랍 철학자의 말처럼 샐러리맨들은 저마다 배급받은
자유를 한웅큼씩 받아들고 휴가철 시간표를 짠다.

그러나 우리의 휴가 풍속도는 어쩐지 "견폐형백견폐성"을 연상시킨다.

한마리 어리석은 견공이 찌그러진 달을 보고 짖을 폼을 갖추자 백마리의
견공들이 일제히 따라 짖는다는 옛말.

어찌 그뿐인가.

한마리의 눈먼 까마귀가 북북서로 머리를 돌려 날개짓을 하면 백마리
천마리 갈가마귀떼가 북북서로 날아간다는 서양속담도 떠오른다.

"비슷함" "일치"의 뜻을 가진 컨포미티(conformity)는 심리학용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딴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취하는 맹목적 부화뇌동"을
의미한다.

소신이 없고 중심이 없는 개체가 다수의 행동을 무조건 따라 하는
부화뇌동.

그렇게 될때 휴가는 휴거(타인에 의해 들어올려짐)가 되고 자기본체는
어디론가 실종하고 말것이다.

우리가 매일 샤워를 해야하듯 마음도 매일 헹궈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 샤워했다고 오늘도 깨끗한 것은 아니듯이.존재의 실종을 막으려면
이러한 오염부터 막아야 한다.

그래서 우린 유조선의 기름오염 기사를 보면서 그것이 다만 바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시적 현상만으로도 3~4년동안 플랑크톤의 순환에 악영향을 미치고
어패류가 떼죽음을 당하는등 해저생태계에 장기간 치명적 피해를 준다는
기름오염.

휴가를 떠나보면 우리주위에 이런 악성 기름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된다.

인간의 기본이 되는 기초질서마저도 아랑곳없이 신성한 산하를 쓰레기통
으로 여기고 남이야 어찌됐건 자기이익만 챙기는 사람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사냥꾼이 아프리카로 사냥갔을 때의 일화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야수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가던 일행중 아프리카 원주민이
갑자기 주저앉아 쉬는 것을 보고 사냥꾼이 헉헉대며 물었다.

"왜 여기서 쉬어야 하느냐"

원주민이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맹렬히 달리고 있다.

그래서 마음은 뒤에 남겨둔채 몸만 앞질러간다.

그러니까 마음이 뒤따라 올때까지 몸이 기다려야 한다"

일속에 파묻혀 미처 챙기지 못한 자기자신의 본질, 그 존재의 심연에
가까이 닿아 가는 것.

무수한 쫓김에 바깥으로 내팽개쳤던 마음을 불러들여 다시 몸과 합치
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휴가가 주는 휴식의 참 본질일 것이다.

20세기의 성자 간디는 일찍이 우리에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일곱가지를
경고한바 있다.

"원칙없는 정치, 노동없는 축제, 희생없는 신앙, 인격없는 지식, 도의없는
기업, 인간성없는 과학, 그리고 양심없는 쾌락"

비행기표를 예약하기에 앞서 우선 휴가철 시간표를 짜야한다.

자기를 찾아가는 시간표.

그 시간표야말로 우리들 가슴속에 "싱싱한 푸성귀를 가꾸는 텃밭"을
만들어 줄 참휴식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