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의 부하는 가용의 이력서를 들고 먼저 호부당관에게로 달려갔다.

대권은 좀 더 머물다가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게요? 더 계시다가 가시잖고"

가진이 만류하는 척 하였으나 대권이 이제 됐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가마 있는 데로 다가갔다.

대권이 가마를 올라탈 때 가진이 넌지시 물었다.

"그럼 돈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직접 호부로 가져가서 바칠까요,
대감님댁으로 보낼까요?"

대권이 얼른 돌아보면서 말했다.

"호부로 가져가면 틀림없이 돈을 더 달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손해지요.
그러니까 천이백냥 정도만 준비해서 우리 집으로 보내세요.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잘 할테니"

천오백냥으로 예상했는데 천이백냥이라니 가진으로서는 삼백냥을 번
셈이었다.

가용에게 용금위 벼슬자리만 주어진다면 천이백냥을 가지고 대권이
무슨 장난을 치든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돈은 곧 보내드리지요. 그리고 며느리장례가 끝나면
아들을 데리고 한번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대권을 배웅하고 난후, 충정후 사정의 부인께서 가마를 타고
조문을 왔다.

이 때는 왕부인, 형부인, 희봉들이 나가 사정의 부인을 맞이하여
큰방으로 들였다.

그 뒤를 이어 금향후, 천녕후, 수산백 세집에서 부의금을 보내어
영전에 놓더니 조금 뒤에 세 사람이 차례로 가마를 타고 왔으므로
가정을 비롯한 가씨집안 남자들이 그들을 맞이하여 대청으로 들였다.

이와같이 조문객들이 줄을 이어 첫날부터 49일동안 녕국부 앞 거리는
흰 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신분에 따라 울긋불긋 관복을 입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다음날 가진은 가용을 불러 예복을 입고 호부로 가서 용금위 임명장을
받아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영전에 드리는 물건들과 장례에 쓸 물건들을 모두 5품 관직의
격식에 따라 준비하게 하고, 고인의 위패에는 5품관 부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문구를 쓰게 하였다.

"천조고수가문진씨의인지령위"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이 5품관 부인의
지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야 가진은 죽은 며느리의 체면을 조금 세워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진은 진가경의 위패에 쓰인 문구를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