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시점에서 서석재 총무처장관이 전직 대통령중 한명이 4,000억원대의
가.차명 예금을 갖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는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발언의 파문이 커지자 서장관은 "시중 이야기를 그저 전해 듣고 한 것"
이라는 식으로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 4일 총무처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만 2년이 되는 현재 이 시점에서 금융실명제가 성공적이었느냐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나의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수 밖에 없고 아직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를 정상화시켜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금융기관과의 모든 거래를 실명화하도록 해서 사채.부동산
투기를 근절시키고 음성.불로 소득을 축소시키려는 것이었다.
실명제 실시에 따라 기대되는 이러한 경제적 효과가 어느정도 거두어졌느냐
를 성급하게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사채시장은 여전히 상당한 규모에 이르고
있다.
최근 금융연구원은 지난해 전국의 사채이용 규모가 33조8,000억원으로
국민총생산(GNP)의 11.2%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한바 있다.
72년의 8.3조치와 93년의 금융실명제 실시로 사금융이 위축되고 있지만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다.
높은 이자를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사금융을 줄이고 모든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서는 금융실명제는 정착될수 없다.
과연 금융실명제가 뿌리내릴수 있을 것인가.
3일 재경원에 따르면 실명확인 대상예금 405조4,000억원 가운데 예금주가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예금은 10조5,000억원이며 가명예금 대상금액중
미전환액은 445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한다면 서 전장관이 말한 4,000억원은 가명예금이라기보다 차명
또는 도명예금일 가능성이 크다.
가명이든 차명이든 그 자체는 처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실명제의 실시내용에 따르면 실명 미확인 예금은 만기때 예금주가 돈을
찾으면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면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비록 가명 차명 또는 도명 예금이라 하더라도 원금및 이자소득의 일정률을
과징금으로 납부하거나 차등과세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될 뿐 가명 차명
그자체가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소문대로 뭉칫돈이 있다 해도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언젠가 또 누구에 의해서든 실명으로 전환될 것이고 자금출처도 밝혀질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4,000억원파문의 진상을 밝혀 국민의 의혹을 푸는
일이다.
온갖 추측을 막기 위해서도 이 일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불신풍조가 만연해 있고 어떤 이야기도 거꾸로 해석하고자
하는 우리사회에서 책임있는 각료의 이야기가 그냥 사그러들수야
없지 않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