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널감에 좋은 것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가진이 반색을 하며 설반에게 물었다.

"우리 목재점에 장목(장목)으로 만든 널감이 한 벌 있습니다.

황해의 철망산에서 구해온 것인데 만년을 가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년을 가도 썩지 않는다고? 허어,그런 재목을 어떻게 자네가."

가진이 설반의 말이 믿기지 않는듯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저희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적에 구해놓은 것인데, 실은 의충친왕께서
돌아가시면 사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친왕이 죄를 범하는 바람에 참변을 당하여 그 널감을 쓸 겨를이
없었지요.

그래서 아버님이 보관하고 있기도 그렇고 해서 팔려고 내어놓았는데,
워낙 값이 비싸서 사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 장목 널감을 쓰실 의향이 있으시면 가져다 쓰도록 하시지요"

값이 비싸다는 말에 가진이 약간 망설여졌지만 이왕 며느리의 장례식을
호화롭게 치르기로 작정한 이상, 그 장목 널감을 쓰면 금상첨화가 될
것도 같았다.

"그 값이 얼마나 하는가?"

가진이 침을 삼키며 설반의 입만 쳐다보았다.

"값이야 천냥을 준다고 해도 이만한 물건 어디 가서 구할 수가
없지요.

값은 따질 수도 없으니까 그냥 가져다 쓰십시오.

다만 널감을 날라오는 인부들에게 품삯이나 몇냥 집어주십시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가진은 천하의 난봉꾼으로 이름이 난 설반이 이런 때는 하늘이 보낸
천사처럼 여겨지기만 했다.

설반은 곧 인부들을 보내어 목재점에서 장목 널감을 가지고 오도록
하였다.

인부들이 가지고 온 널감들을 보니, 두께가 모두 여덟치씩이나
되었다.

나뭇결은 빈랑나무 무늬같고 냄새는 단향이나 사향같이 은은하였다.

널감을 손으로 두드리면 금속이나 옥을 두드릴때 나는 소리가 났다.

그만큼 두껍고 단단하고 품위 있는 널감인 셈이었다.

그 널감을 구경한 사람들이 참으로 진귀한 물건이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진은 흥분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즉시 목수들을 시켜 관을 짜게
하였다.

그런데 보옥의 아버지 가정은 가진이 며느리의 장례를 위하여 너무
호화롭게 준비하는 것에 대해 언짢아하였다.

"이건 우리 같은 집안에서 쓸 널감이 아닌 것 같애.

아무래도 분수에 넘쳐. 신분에 맞게 삼나무 널감을 쓰는 것이
어떻겠나?"

그러나 가진은 가정의 충고가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