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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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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렴 장막 으슥한 곳/나무 그늘 옮아 돌고,/드르렁 드르렁/낮잠도
    무르익다. // 해그림자 비낀 뜰엔/찾아 오는 사람 없고/바람에 문짝만이
    닫혔다가 열렸다가"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하일"이란 시에서 여름 한낮의 한가롭고
    태평스러운 풍정을 이렇게 읊었다.

    해시계 구실을 하는 나무그림자는 은연중 긴 시간의 흐름을 암시해
    주고 코고는 소리와 문짝 여당히는 소리는 정적을 더욱 깊게 느끼도록
    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한잠 늘어지게 즐기는 낮잠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표현한 시인은 다시 없을듯 싶다.

    나무 그늘밑에 평상을 내다놓고 그위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부채질을
    하거나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이 제일급의 피서였던 옛
    사람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 더위를 피했다.

    창문에는 대발 모시장발 구슬발등 문발을 쳐 저절로 바람이 드나들도록
    했고 잘때는 죽침을 베고 죽부인을 안고 잤다.

    외출할때는 등나무로 만든 등거리와 등토시위에 풀먹인 모시옷이나
    삼베옷을입고 직사광선을 피하기위해 삿갓을 썼다.

    더위에 시달려 식욕을 잃거나 몸이 쇠약해지지 않도록 음식에도
    신경을 썼다.

    청량음식으로는 일종의 물만두인 수교위나 수단같은 것이 있었으나
    요즘은 좀처럼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복날이면 먹었던 개장국이나 육개장 계삼탕등은 이열치열로 몸을
    보하고자 했던 음식이고 팥죽은 병을 예방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구환경이 변한 탓으로 더위가 더
    심해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옛사람들도 날씨가 겨울이 여름같고 여름이 겨울같다고 걱정하면서
    "건복의 근심"이란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기온의 급격한 변화는
    예전에도 있었던것이 분명한데 요즘 사람들은 유난스럽게 더위를
    못 참는 모양인지 피서를 못가 안달이다.

    에어콘이나 선풍기도 쓰고 있으니 더위를 못참는다기 보다는 더위를
    즐기려든다는 것이 더 걸맞는 표현인 것 같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을 맞아 들끓는 피서행렬을 보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규보는 800년전 풍류객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피서법 한가지를
    고안해낸 적이 있다.

    바퀴가 달린 움직이는 정자 "사륜정"을 만든다는 기상천외의 착상이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솔바람이 이는 곳을 찾아 끌고 다닐수 있는
    이 정자의 설계내용은 그의 "사륜정기"에 자세힌 기록돼 있다.

    풍류도 이 정도는 돼야 상품이고 피서도 이 정도의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피서다운 피서가 될것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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