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행정협정은 우리의 사법주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대표적 불평등
조약이다.

미군관련범죄에 대한 우리의 형사재판권을 극도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이어서 우리가 미국과 완전히 대등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쌍무협정을 체결하기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점은 납득할수 있다.

그러나 불평등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난88년 한.미간에 체결된 이른바 담배양해록이 극심한 불평등조약
이라는점에서는 결코 한.미행정협정에 못지 않다.

우리의 조세주권 경제주권까지 침해하는 협약이라고 볼수 있다.

미국은 담배양해록을 근거로 우리 정부가 국민건강 때문에 지나친
담배판촉활동을 말리려는 것조차 협정위반이라고 눈을 부라린다.

또 우리정부가 국산담배나 외국산담배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담배소비세율을 올리겠다고 하는데 대해서도 완강히 반대한다.

이 때문에 담배소비세를 인상해서 교육개혁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정책까지도 차질을 빚게 될 판이라는 소식에는 그저 아연해질
따름이다.

도대체 어느나라 정부가 쌍무합의의 양해록(메모랜덤)에 발이 묶여
세금조정도 못하고 국민건강을 위한 시책도 마음대로 펼수 없단
말인가.

국제사회에서 이보다 더한 불평등협약이 어디에 있는가.

미국은 인권옹호 호혜평등을 내세우는 국가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불평등을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도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게된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자국 담배회사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하면
미국전체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이다.

이점에 유의해서 31일부터 이틀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양해록 개정협상
에서 미국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데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정부 대표단은 우리의 경제주권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협상에
임해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 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에도 양해록 개정에 극히 부정적이며
비타협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양해록 개정이 과연 우리 희망대로 관철될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미국은 양해록 개정으로 자국산담배의 대한 수출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모양이지만 우리로서는 담배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될 국민건강증진법이 양해록 때문에 햇빛을 보지
못한채 사문화된다면 그건 결코 가볍게 넘길 사태가 아니다.

미국은 국민건강증진법이 발효되면 통상법 301조를 발동,보복조치를
검토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담배양해록 문제가 설령 양국간에 통상마찰로 번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양해록 개정을 관철해야 할것이다.

국민들은 수입담배에 얽힌 이같은 현실에 눈을 돌려 스스로 수입담배
소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양해록보다 더 큰 힘은 소비자에게 있다.

미국측도 이점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