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유일의 화학펄프업체인 동해펄프에 제지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천덕꾸러기 적자기업에서 황금알을 낳는 효자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와 한국제지의 주식공개매수선언 이후의 경영권향방이다.

동해펄프는 지난 74년 정부가 기간산업육성을 위해 만든 업체로 87년에
민영화됐으며 연간 38만t의 표백화학펄프를 만들어 국내 제지업체에 공급
하고 있다.

국내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한다.

지난 몇년동안 동해펄프는 경영난으로 곤욕을 치뤘다.

작년매출은 1천5백15억원에 적자가 1백94억원이나 됐고 93년을 합친 2년
동안의 누적적자는 무려 6백56억원에 달했다.

특히 작년 상반기엔 부도설마저 겹쳐 최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외견상 별볼일없는 동해펄프가 관심의 핵으로 떠오른 것은 국제펄프값급등
으로 경영상태가 급속히 호전되고 있어서이다.

펄프값이 2년새 t당 3백20달러에서 9백달러대로 3배가 뛰면서 동해펄프는
올상반기에만 1백13억원의 흑자를 낸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말까진 흑자가 2백50억~3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올 매출도 2천6백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2%나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해펄프측은 "내년에는 누적적자를 모두 갚고 흑자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펄프가격은 앞으로도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거의없어 부실기업에서
벗어나 알짜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동해펄프에 별관심이 없던 제지업체들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런 와중에 한국제지가 지분을 20%로 올리겠다며 최근 주식공개매수를
신청했다.

한국제지는 자금력이 풍부하기로 소문난 기업이다.

외부로 알려진 계열사는 한국제지와 계양전기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너인
단사천회장은 대단한 재력가로 통한다.

특히 부동산업체인 해성산업을 통해 서울 북창동 해남빌딩을 비롯, 서초동
삼성동등지에 10여개의 큰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식공개매수는 기업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아니라는게
제지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동해펄프의 총발행주식은 9백54만주로 무림그룹 14.3% 계성그룹 10.9%
한국제지 9.9% 삼덕제지가 6.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누구도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할수 없고 시급한 설비투자에도 발벗고
나설수 없는 구도로 돼있다.

따라서 이번 한국제지의 공개매수선언은 재력이 있는 무림과 한국제지가
힘을 합쳐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최대주주인 무림그룹이 한국제지의 공개매수에도 불구, 조용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계성제지는 법정관리중이라 지분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고 여타 주주사들
은 지분이 너무 적아 싸움에 가세할 입장이 아니다.

한국제지 이연기사장은 "결코 동해펄프를 빼앗기 위해 공개매수를 신청한
것은 아니며 펄프의 안정조달과 경영권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림은 이번 공개매수를 사전에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림 역시 한국제지의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식매집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사가 사이좋게 주식을 사들여 모두 합쳐 40%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면
공동경영을 위한 확고한 발판을 구축할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미 동해펄프는 지난 3월 주총에서 무림그룹 이동욱회장을 회장으로,
한국제지 윤갑수를 감사로 앉혀 양그룹이 공동으로 경영을 관장하기
시작했다.

이동욱회장은 "무림과 한국제지는 동해펄프가 잘돼야 한국의 제지산업이
산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동 경영에 나서고 있다"고 말한다.

유일한 펄프업체인 동해펄프가 경쟁력을 갖고 운영돼야 외국 펄프업체의
횡포를 막을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경영권이 안정되고 흑자로 전환되는 내년부터는 설비증설이나 제지
일관생산시스템구축 원자재운임절감을 위한 전용선도입문제등을 적극 추진
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분간은 경영권 다툼없이 양사의 공동 경영체제로 운영될 전망
이다.

하지만 제1대주주의 승인없이 기업인수가 가능해지는 97년초부터는 양사간
의 경쟁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제지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 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