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라디오가 절대적인 문명의 이기였다.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살고 있는 주민들이 문명을 접하고 바같 세상얘기를
들을수 있는 통로는 오직 라디오뿐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라디오는 그들의 꿈이었고 제니스는 라디오의 대명사였다.

시대는 한참 뒤지지만 우리나라도 60년대까지는 유선방송의 스피커가 바깥
소식을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수단이었다.

어쩌다 라디오를 마주치면 그것은 영락없이 제니스라디오였다.

부피는 투박했으나 디자인은 멋이 있었고,게다가 요모조모 내는 요술소리는
어린 마음을 사로잡기에 동분했다.

따라서 이 제니스라디오는 외제이면서 우리 어린 시절의 꿈이기도 했다.

이런 제니스를 우리 LG전자가 손에 쥐었다.

과거 미국과 한국사람들이 가슴에 간직했던 꿈을 LG전자가 성취한 셈이다.

뉴욕 타임스,월 스트리트 저널,USA투데이,시카고 트리뷴,CNN등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마지막(The last)이라는 타이틀과 말로 제니스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미국내가전공장은 한때 90개에 이르렀으나 제니스만이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왔었다.

사실 삼풍백화점 붕괴이후 한국이미지가 먹칠된 상황에서 튀어 나온
LG전자의 제니스인수는 "신선한 충격"으로 까지 받아 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언론들은 그동안 한국의 발빠른 경제성장 운운하며
대형사고 일지를 들먹거리는등 비아냥거리기를 서슴치 않았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경우는 한 기술자의 말을 인용, "대형사고발생이 이상
한 것이 아니다.

더 자주 발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LG의 제니스인수건을 두고도 뉴욕 타임스는 일본기업들이 미기업인수에서
반은 상처를 다독거리는 때에, 한국기업들이 미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고
크게 다루었다.

이와함께 이 신문은 메모리 칩및 가전부문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의 기술수준이나 마케팅전략은 그다지 진보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시작이면서도 자신에 넘쳐 있다는게 다르다.

올들어 계속되는 현대의 AT&T마이크로 전자부문인수를 비롯, LG의 제니스
인수를 보며, 세계시장으로 큰 행보를 딛는 코리아는 다시금 확인해 보는
느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