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가 진종과 향련 편을 들지 않고 김영 자기 편을 들자 김영은
더욱 신이 나서 학숙에 앉아서도 머리를 흔들고 혀를 차면서 진종과
향련에 대하여 계속 중얼거렸다.

옆에서 듣다 못한 옥애가 한마디 하였다.

"무얼 중얼거리는 거야? 진종이 어떻고 향련이 어떻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넌 모르면 잠자코 있어"

"내가 뭘 모른다는 거야?"

"이야기해줄까? 그러면 기절할걸"

그렇게 뜸을 들이고 나더니 김영이 떠벌리기 시작했다.

"난 똑똑히 보았다구. 진종이와 향련이 뒤뜰에서 서로 입을 맞추고
엉덩이를 만지고 하였어.

그러더니 둘이 그걸 꺼내놓고 누구 것이 큰가 재보는 거야. 큰 쪽에서
먼저 올라타려고 말이야"

진종과 항련 자리는 좀 떨어져 있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옥애는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가장도 들었다.

가장은 어릴 적부터 가용과 함께 자라 둘이 무척 친하였다.

그래서 녕국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과 가용이 남색하는 관계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특히 불만이 많은 하인들이 그런 소문을 내는 것을 좋아하였다.

가용의 아버지 가진 대감은 가장이 같은 집에 있으면 더 나쁜 소문이
나겠다 싶어 가장에게 따로 집을 주어 녕국부에서 나가 살게 하였다.

가장은 가용보다도 더 수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잘난 값을
한다고 그러는지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늘 닭싸움판과 개싸움판으로
몰려가 도박을 일삼고 술집이나 기생집 출입을 제집 드나들듯 하였다.

그렇게 가용과 사촌간으로 친하고 진종이 가용의 처남이 되므로
김영이 진종을 놀리는 것을 가만히 참고 볼 가장이 아니었다.

가장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김영을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설반과의
관계 때문에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었다.

가장은 설반을 따라다니며 공짜로 술을 얻어먹고 계집질을 해보는
재미가 만만찮은데,한때 설반의 사랑을 받았던 김영을 때리거나 하면
설반과의 관계가 불편해질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서에게 잘못 보이면 학숙생활에 지장이 많을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런 계산을 하느라고 가장이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지만, 설반이나 가서와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으면서 김영을
혼내줄 방도가 없나 하고 속으로 계략을 짜고 있었다.

"야,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마. 향련이 아무에게나 붙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더군다나 대낮에 자기 물건을 꺼내놓고 길이를 재보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아.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옥애가 김영에게 대들며 서로 옥신각신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