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내란죄 고소고방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중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부문은 첫 발포와 발포경위.

검찰 수사결과 광주에서의 첫발포는 5월19일 오후 5시쯤 광주고등학교
부근에서 있었으며 이후 모든 사격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이뤄졌다고 검찰은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검찰발표대로 계엄사령관이 자위권보유를 최초로 천명한 것이
21일 오후7시30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시각이전의 발포는 불법적인
대민사격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검찰이 밝힌 19일이후의 발포를 요일별로 짚어보자.

<>80년 5월18일=오후5시쯤 사직공원을 수색하고 복귀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장갑차가 광주고교 부근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했다.

시위대는 불붙은 짚단을 던져 장갑차에 불을 붙이려하자 장갑차에 타고
있던 한 장교가 공포를 쐈다.

이 장교는 공포를 쏜뒤 다시 위협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 1명이 총격을 받아부상을 입었다.

계엄군의 사격에 의한 첫 부상자이다.

<>20일=오후 11시경 3공수여단이 광주역일대에서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던
중 트럭 버스등 시위대의 차량돌진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등 수세에
몰렸다.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했다.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해 돌진차량을 향해 발포했다.

이때부터 총격에 의한 사상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또 광주역으로 실탄을 전달하러가던 특공지원조가 시위대와 마주쳐 진로가
막히자 위협사격을 가했다.

이날밤 12시경 11공수여단의 61,62대대장은 대대장짚차에 보관하고 있던
경계용실탄을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위급시에만 사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중대장이상 장교들에게 1탄창(15발)씩 분배했다.

<>21일=이날 오후7시30분 계엄사령관이 자위권 보유를 최초로 밝혔다.

결국 이 시각이전의 모든 발포는 계엄사령관의 명령도 없이 발포가 이뤄진
것이다.

11공수여단 소속 63대대는 오전 10시30분경 실탄을 장교들 위주로 분배
했다.

오후1시께 시위대의 차량공격이 있기전에 이미 장교들에게 실탄지급이
완료된 상태였다.

오후1시경 전남도청앞.시위대의 1차 장갑차돌진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수부대 사병 1명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이에대응 공수부대의 첫 발포가 있었다.

시위대가 이에 격분, 장갑차와 버스등으로 재차 차량공격을 폈다.

공수부대장교들은 집단적으로 발포하기 시작했다.

이때 7공수여단 34대대로 철수하던 31사단병력으로부터 실탄을 인계받아
장교들에게 분배했다.

돌진하는 차량을 피해 인도와 인근건물 옥상에 올라갔던 공수부대원들중
일부는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 고기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