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가로지르는 라인강하류엔 다리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도시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공업지역으로 유명한 만하임과 루드비히샤펜이다.

보통 쌍둥이 도시로 불리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만하임이 크고 작은 100여개 기업들로 구성된 도시라면 루드비히샤펜은
1개의 기업체만으로 이뤄져 있다.

이 한개의 기업이 세계 4위의 종합화학업체이자 바이에르 훽스트와 함께
독일화학업계의 "빅3"로 꼽히는 BASF다.

루드비히샤펜의 BASF본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를 이룰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 모여있는 공장은 모두 300여개다.

부지의 직경만도 무려 7km에 달한다.

도로연장길이는 110km나 된다.

공장사이를 잇고 있는 지상파이프라인의 총연장길이는 2,000km에 이른다.

서울에서 부산을 2번 왕복하고도 남는 길이다.

차를 탄채 외부시설만 둘러보는데도 한나절이나 소요된다.

과연 8,000가지의 화학제품을 생산, 170여개 나라에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화학단지라고 할만하다.

이런 거대한 화학단지가 건설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BASF가 꾸준히 생산시설을 한곳에 모으려고 노력한 결과다.

BASF는 화학산업의 특성을 반영, 일찍부터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추구
했다.

"석유화학산업은 원유를 차례차례 정제해 나가는 과정에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업종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관된 생산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헤르만스타인동남아과장).

BASF는 이런 판단에 따라 일단 생산된 화학제품을 다음단계에서 중간재로
사용하는 수직계열 생산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루드비히샤펜본사가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것이나 단지내 공장이 단계별
생산물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생산의 수직계열화는 해외진출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지에 직접 공장을 설립하든 현지기업과 합작공장을 만들든 원칙은 생산의
수직계열화다.

물론 모든 나라에 거대한 화학단지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지 생산공장의 성격이나 생산제품의 특성을 반영, 반드시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다.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가장 효율적인 생산과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각종 소비재의 원료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합성수지등 화학제품을
적기에 공급,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수 있다는게 BASF의 판단이다.

생산의 수직계열화는 말하자면 석유화학산업의 특성을 살린 BASF의 세계화
전략인 셈이다.

BASF가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내기 위해 애용하는 방법중 하나가 기업
매수합병(M&A)이다.

지난 68년 독일 유수의 에너지회사인 윈터샬(Wintershall)사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업인수로 세계경제계의 톱
뉴스였다.

BASF가 당시만해도 성공가능성이 의문시되던 대규모 M&A를 실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석유화학의 근원이 되는 원유및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러자니 자연 대규모 에너지회사가 필요했다.

BASF의 이런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윈터샬사를 인수한 이후부터 BASF는 고도성장기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현재 유럽에서 루드비히샤펜본사와 함께 BASF생산의 두축을 이루고 있는
벨기에 앤트워프공장도 따지고 보면 M&A의 산물이다.

BASF는 60년대말 벨기에에 진출하려 했으나 직접 공장설치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앤트워프에 있는 벨기에의 조그만 공장을 인수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특유의 생산의 수직계열화가 시도됐다.

그래서 루드비히샤펜본사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BASF의 대표적 생산단지가
됐다.

유럽내 생산에 주력하던 BASF가 본격적인 해외생산으로 눈을 돌리게 된
시기는 70년대부터다.

이 때에도 생산의 수직계열화와 M&A원칙이 예외없이 적용됐다.

BASF는 지난 71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염료및 플라스틱공장을 건립
했다.

형식은 현지의 화학업체와 합작방식을 취했으나 내용은 BASF의 현지업체
인수였다.

이를 계기로 BASF는 시장개척과 관세절감의 이득을 누리게 됐다.

BASF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생산거점을 더욱 효율적으로 정비, 대규모
화학콤플렉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7억마르크를 들여가면서 미국현지공장들을 재정비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BASF의 해외생산거점은 이제 39개국으로 확대된
상태다.

세계 고성장지역으로 꼽히는 곳에는 여지없이 BASF공장이 진출해 있다.

미국과 근접한 중남미지역만해도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등지에 BASF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아시아지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우 이미 3개의 BASF합작기업이 공장을 가동중이며 2개의 신설
합작기업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BASF는 석유화학산업의 세계화과정에서 얻은 M&A노하우를 이제 새로 시도
하는 업종인 의약과 가스부문에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말에는 독일의약업체인 사기타사를 인수했다.

영국 의약회사인 부트사도 지난 4월부터 BASF그룹에 완전 편입됐다.

올들어서는 BASF계열 크놀사가 미국 IVAX와 합작으로 독일내에 조인트벤처
를 설립하기도 했다.

가스부문진출을 위해선 M&A보다는 합작전략이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유럽 최대 천연가스업체인 러시아의 가즈프롬사와 가스공급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윈가스(WINGAS)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함께 BASF는 노르웨이 사가석유회사와도 가스공급계약을 맺을 계획
이다.

석유화학산업의 특성을 살려 현지공장생산시스템의 수직계열화를 추구하고
있는 BASF.

그 과정에서 M&A라는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 업종다각화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BASF의 세계화전략은 석유화학업체인 BASF를 상황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