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 포스코경영연 경제연구본부장 >

며칠전 호화 백화점의 대명사로 불리던 삼풍백화점이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최근 1~2년새 연이어 터진 대형참사로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랬지만 이번 삼풍백화점 붕괴후에도 여러가지 원인
분석과 대책들이 나왔다.

그러나 그 원인분석과 대책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대책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구체적으로 시행이 되지 않았고 그 대책이라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
이고 모호하다.

알다시피 최근 방송과 신문지면을 온통 뒤덮은 대책이라는 것이 주로
국민의식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고, 정부는 재난 구호청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식도 중요하다.

그러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변화가
이루어질 동안의 일어날지도 모르는 참사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재난구호청은 본질적 대책이 될수 없다.

재난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이 중요하지 재난후의 처방은 소위 "사후약방문"
에 불과하다.

이번 참사가 우리의 건축기술, 시공기술이 모자라서인가.

절대 아니다.

외국에서 훌륭한 성가를 낸 우리 건축회사가 하나 둘인가.

어디에서도 우리 건설업체가 지은 건물이 이처럼 어이없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오직 국내에서만 일어나고 있다.

이번 참사도 부실시공 부실감리 그리고 건축주의 무리한 증축이 주원인
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곧 관련공무원, 관련 시공업자, 건축주 모두의 총체적 부실의 결과
이다.

부실시공을 눈감아 주는 비리 공무원이 있었고 대충대충에 익숙한 감리가
있었으며 상혼에 눈 먼 건축주가 있었다.

또 이 뒤에는 박봉에 시달리는 소수 비전문직 공무원에게 과대한 권한이
주어져 있어 비리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운 환경이 있었고 형식적인 감리로도
지탱할수 있을 정도로 감리시장의 시장 메커니즘이 약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공무원, 감리자의 양식과 법, 제도에만 매달려 시행
착오를 되풀이 할수는 없다.

선거시마다 구호로만 나왔던 공무원 처우 현실화를 정부 정당, 그리고
국민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비리의 유혹을 떨치고 법 제도를 집행하는 공무원이 자기자신을 지킬수
있을 정도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감리시장을 개방하여 국내에서도 감리시장에 경쟁체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국내시장 보호라는 명목으로 이를 늦춘다는 것은 이번 참사와 같이 더많은
비용을 초래하고 감리인력 확보롤 더디게 할 뿐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원인은 바로 사회의 감시기능(Monitoring
Mechanism)이 취약하다는데서 찾을수 있다.

정부가 해야할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대안을 찾을수 있다.

감시기능이 취약하다 함은 정치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계약"의 맹점인
단순성과 추상성에 있다.

즉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는 암묵적인 계약이 정부와 국민사이에 맺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계약은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즉 납세자인 국민이 탈세를 할 경우에는 처벌을 받지만 정부가 약속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다.

물론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납세자의 요구가 반영될 여지가 있으나 현재
우리 정당제도나 행태, 그리고 대의기관의 역할로 볼 때 크게 기대할 바가
못된다.

또 이 제재 방법은 전반적인 책임은 물을 수 있으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따라서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하여 우리는 영국에서 일부 시행하고
있는 "시민헌장(Citizen"s Charter)"의 제정을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그에 상응하는 공공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정부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입법화 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어떤 공공서비스를 반드시 제공해야 하며 어떤 절차를 거쳐 어느
공무원이 언제까지 해야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국민은 공공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회감시 기능이
작용할 공간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를 사전 예방하는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경쟁상태에 있는 시장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해야만 한다.

이는 공급자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아니라 바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경우에는 그 서비스를 받기 위하여
세금을 납부한 납세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납세자들의 욕구
는 항상 도외시 되게 마련이다.

바로 이를 막는 방안이 이 "시민헌장"의 제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무원은 주고객이랄 수 있는 시민 내지는 국민 지향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따라서 공무원의 평가도 종래 서열위주, 연공위주(Seniority Rule)에서
얼마나 시민의 욕구에 맞는 행정을 했느냐라는 성과(Performance)위주로
자연스럽게 옮아 갈 것이다.

이것은 행정조직에 경영 마인드를 심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조직의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을 가져와 시민편의의 공공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시민헌장"은 상호 이해와 도덕적 책임에 바탕을 둔 종래의 묵시적
계약관계를 구체적이고 보다 강력한 법적인 관계로 명확히 함으로써 공공
서비스의 효율화와 행정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참사를 근원적으로
사전에 예방할수 있는 장치를 가지게 될 것이고 행정조직의 지속적인 개혁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