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과 파란색이 반반인 사람이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

영국의 공중전화박스엔 예외없이 이런 모습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그 옆에는 "BT"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공중전화를 BT라는 회사가 운영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브리티시 텔레콤(British Telecom)"이란 단어는
어디에도 없다.

비단 공중전화박스만이 아니다.

런던의 본사나 전국 지사에도 브리티시 텔레콤이란 말은 거의 찾아볼수
없다.

오로지 BT만 있을 뿐이다.

BT가 이같이 "약자"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91년 회사의 정식명칭을 British Telecom에서 BT로 아예 바꿨기
때문이다.

"지난 84년 민영화된 이후 BT의 무대는 더 이상 영국이 아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통신망으로 인해 더욱 좁아지고 있는 세계가 우리 시장이다.
그러자면 영국전화회사라는 한정된 이미지를 벗어버리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BT는 이제 British Telecom의 약자가 아니다. 그 자체가 고유
명사다"(애시 홍보담당이사).

"BT의 고유명사화".

여기에 차세대 세계시장을 석권하려는 BT의 확고한 의지가 함축돼 있다.

멀티미디어의 대중화로 성큼 다가서고 있는 커뮤니토피아(Communitopia)의
주도자가 된다는게 BT의 꿈이다.

커뮤니토피아는 커뮤니케이션과 유토피아의 합성어.

가정과 직장등을 통신망으로 연결, 홈쇼핑 게임 영화 교육 원격진료및
치료등을 앉은 자리에서 해결하는 말그대로 꿈같은 사회를 가리킨다.

그러자면 가정과 직장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통신망, 이른바 "정보
고속도로"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 정보고속도로건설작업을 주도하는데 BT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한 정보고속도로건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단일회사가 이 작업을 추진하는건 특히 어렵다.

이 난관을 뚫기 위해 BT가 채택한 세계화전략이 현지 통신업체와 "전략적
제휴"다.

실질적으론 BT가 단일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되 형식적으론 현지업체의
이미지를 빌려 각종 장벽을 헤쳐 나가겠다는 것이다.

BT의 이런 전략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게 미국 2위의 장거리통신회사인 MCI사와의 전략적 제휴.

영국과 유럽에 사업기반을 가진 BT로서는 MCI를 파트너로 끌어들임으로써
미국시장에 진출할 기반을 갖추게 된것은 물론 글로벌통신망의 구축작업도
급진전을 이루게 됐다.

BT와 MCI간 제휴의 결과물은 콘서트(Concert)라는 통신서비스회사의 설립
으로 나타났다.

BT가 75%, MCI가 25%의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콘서트는 멀티미디어시대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음성뿐만 아니라 데이터 화상등을 자유자재로 전송할수 있고 110개국
1,300개도시가 단일 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갈수록 콘서트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질레트 제이피 모건 맥도널더글러스 닛산자동차 히타치등 세계적 기업
대부분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현대 삼성 럭키증권등이
콘서트의 고객이 됐다.

BT는 MCI와의 전략적 제휴를 발판으로 세계 각국의 주요 통신업체들을
콘서트서비스로 끌어들이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북유럽에서는 이미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등의 통신업체들이 콘서트서비스
에 파트너로 참여키로한 상태다.

아시아지역에선 일본의 일본전신전화(NTT)를 파트너로 선정, 영입작업이
한창이다.

BT가 지난해 7월 일본정보통신(NI&C)과 제휴협정을 체결한 것도 NTT영입
작업의 일환이다.

일본정보통신은 NTT와 미국 IBM의 합작기업.

NTT와의 전략적제휴를 위해 아들격인 일본정보통신과 전술적으로 결혼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BT의 제휴대상은 비단 통신업체에만 국한되는건 아니다.

"금융그룹이고 일반 제조업체고간에 글로벌 통신망구축작업에 필요한
기업이라면 모두 파트너가 될수 있다"(애시이사).

지난 93년 스페인의 최대 금융그룹인 방코 산탄더(Banco Santander)와
데이터통신 합작기업을 설립키로한 것도 이런 전략에서 기인했다.

BT가 스페인 합작기업에 투자할 금액은 10년간 4억파운드(5,000억원상당)에
달한다.

이와함께 지난 1월엔 BT와 독일의 유수 화학그룹인 비아크사와 콘서트망
관련 제휴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비아크사는 이미 독일내에 4,000km에 달하는 광케이블을 보유하고 있어
일찌감치 BT의 전략적 파트너로 손꼽혀온 회사다.

BT는 이런 식으로 세계 각 지역, 궁극적으론 각 나라에 파트너를 형성해
지구촌을 단일통신망과 단일서비스망으로 엮어가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 긍극적으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일반소비자까지 BT의
통신서비스망을 이용하지 않고는 멀티미디어시대에 살아나갈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BT의 이런 자신만만한 계획이 나오기까지는 지난 84년 민영화가 이뤄진
이후의 경영혁신성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

민영화이후 BT는 관료주의의 옷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인원삭감 외부경영진
영입등 과감한 경영합리화조치를 취했다.

임직원수는 국영회사때보다 무려 42%나 줄었다.

또 미국의 IBM 블랙&데커 US웨스트등 세계적 기업들로부터 경영진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전화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유선TV회사들을 가볍게
따돌렸다.

전화회선도 민영화이전인 2,000만회선보다 35%나 많은 2,700만회선으로
늘어났다.

세계를 정보고속도로라는 단일 통신망으로 묶어 커뮤니토피아건설의
주도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BT.

그 방법으로 세계 각국 업체와 전략적제휴를 선택한 BT의 이런 야심이
빨리 달성되면 될수록 커뮤니토피아건설도 빠른속도로 현재형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