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세계화된 기업이면서도 가장 세계화가 덜 된 기업".

독일의 자존심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계화정도에 관한한 이런 이율배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브랜드인지도만 따진다면 모든 업종을 통틀어 벤츠보다 더 세계화된 기업
도 없다.

그런면에서 보면 벤츠는 세계화에 가장 앞서 나가는 기업이다.

반면 벤츠의 생산과정을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벤츠는 "순수독일주의"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생산비율이 전체의 2%에 불과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면에서 보면 벤츠의 세계화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고품질을 바탕으로한 판매의 세계화와 생산의 국수주의.

이 양면적인 평가에 벤츠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전략이 담겨있다.

"앞으로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현지생산과 차종의 대중화에도 주력,
생산의 세계화를 달성하겠다"(전략기획부 라이델바흐박사)는게 벤츠의
목표다.

벤츠는 그동안 오로지 고품격 차종만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해온게 사실이다.

독일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 유명한 "세꼭지별
(Three Pointed Star)심블럼"은 곧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실제 벤츠의 S클래스카는 세계 고급차시장의 44%를 석권하고 있다.

그러나 벤츠의 이런 고고한 전통은 지난93년도에 손상을 입었다.

인건비상승 매출부진등으로 11억8,000만마르크의 손실을 기록했던 것.

벤츠의 역사상 처음 겪어본 마이너스성장이었다.

92년에는 승용차판매실적에서 사상 처음으로 라이벌 BMW에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더욱이 중.저가 시장으로 영업범위를 한정하던 폴크스바겐과 일본 혼다
자동차등이 조금씩 고가시장을 침범해 들어오면서 벤츠의 고상한 품위는
위협을 당하게 됐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자동차의 대중화와 현지생산체제 구축전략이다.

"93년 적자를 계기로 리스트럭처링작업을 추진했습니다.

부품조달비용등 각종 비용을 줄이고 분권화와 감량경영을 통한 조직
재정비가 골자였죠.

현지생산확대전략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자면 차종의 대중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라이델바흐박사)
차종의 대중화를 가장 앞서서 이끌고 있는게 이미 개발을 완료한 A클래스카
이다.

벤츠승용차는 크게 4개의 시리즈와 58개의 기본모델 140여개의 세부모델로
구성된다.

시리즈는 C,E,SL,S등으로 엄격하게 등급이 구분되며 뒤로 갈수록 고급차종
으로 분류된다.

A클래스는 아예 이 기본 시리즈에도 빠져 있다.

그런데도 벤츠는 A클래스 승용차를 줄줄이 선보이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미 개발을 마친 A클래스카는 독일 라스타드공장에서 생산채비를 갖추고
있다.

A클래스카의 외관은 피아트의 푼토보다 작으면서 내부는 기존 C클래스
크기라는게 회사의 설명이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벤츠는 앞으로 15년간 4,500만~5,500만대의 A클래스
카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벤츠는 이와함께 스워치시계로 유명한 스위스의 SMH사와 합작, 도심형
소형차인 "스마트"를 생산키로 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값이 싼 소형차가 적합하다는 판단아래 대량생산
대량판매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이에따라 중국시장을 겨냥한 가정용소형차(FCC)가 이미 선보였다.

소형차생산이 세계화전략의 한 축이라면 현지생산확대는 또다른 한 축이다.

현지생산확대전략은 "독일제(Made in Germany)를 고집하지 않고 메르세데스
벤츠제품(Made by Mercedes Benz)임을 강조하겠다"(크리스천다우홍보부장)는
말에 함축돼 있다.

벤츠는 새로운 전략에 따라 지난해 경남창원에 쌍용자동차와 합작으로
엔진생산공장을 설립했다.

벤츠 역사상 최초의 해외엔진생산공장이다.

93년중반부터는 멕시코공장에서 E클래스와 C클래스를 조립중이다.

인도에서도 텔코(TELCO)와 합작으로 연2만대의 E클래스카를 생산하고 있다.

97년부터는 미국 앨라배마주 무스갈루사공장에서 4륜구동 다목적차(AAV)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런 전략이 맞아떨어지면 현재 2%에 불과한 승용차의 해외생산비중은
2000년까지 10%로 늘어나고 해외부품 조달비율도 15%에서 30%로 높아질
것으로 벤츠는 전망하고 있다.

벤츠는 승용차뿐만 아니라 트럭등 상용차부문에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럭이나 버스는 현지도로사정과 교통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게 벤츠의 판단이다.

벤츠는 이런 전략을 가속화,세계 37개의 상용차 생산및 조립공장을 모두
현지화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벤츠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라는 자존심마저 버린건 물론
아니다.

기존의 고급승용차는 승용차대로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겠다는게 벤츠의
전략이다.

올해 선보인뒤 무려 270만대나 판 E200과 같은 신형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 고급차시장의 우위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고품질 자동차의 명성을 유지하되 소형차생산과 현지생산을 강화한다"는
벤츠의 이런 세계화전략은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59만2,000대의 승용차와 29만대의 상용차를 팔아 18억
5,000만마르크의 순이익을 남겼다.

적자 1년만에 다시 흑자로 반전시키는 저력을 보인 것이다.

과연 지난 100여년동안 자동차산업을 선도해온 벤츠가 앞으로도 그 위상을
유지할수 있을지는 새로운 세계화전략이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