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사고현장의 공포와 광란의 아비규환속에도 따뜻한 인간애가
넘쳐 흘렀다.

TV등을 통해 사고를 지켜본 시민들마다 생존자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장면에는 슬픔속에서도 환호했으며 부실시공관련 보도가 나오자 일제히
"나쁜 놈들"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틀째 행방불명된 아들과 딸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채 쓰러진 주부의
처절한 모습이 보는 이의 오열을 자아내는 가운데 사고현장은 이날 대체로
수습단계에 들어갔으나 콘크리트더미를 들어낸 여기저기엔 희생자들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붉은 핏덩이가 흥건히 고여있었다.

<>.18구의 시신이 안치된 강남 성모병원 영안실에는 30일 아침 뒤늦게
비보를 듣고 달려온 친지들과 유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전날의 악몽이
믿어지지 않는 듯 한바탕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송은정씨(28.백화점직원) 유족들은 이날 갑자기 닥친 초상에 영정도
마련치못한 빈소에서 "우리를 남겨두고 너만 혼자서 세상을 떠났느냐"며
목놓아 통곡,이를 지켜보는 주위 조문객들의 슬픔과 분노가 더욱 고조됐다.

<>.재해대책본부가 마련된 백화점앞 삼풍주유소에는 새벽부터 실종자
신고를 접수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뤄 사고의 여파가 더욱 커질
것을 암시.

또 길가에 그대로 널려있는 사망자의 핏자국과 찢어진 희생자의 옷자락,
굽이 떨어져나간 구두등 행불자의 유품은 사상자의 신원을 찾아해메는
가족들의 발과 눈을 묶어두었다.

<>.삼풍주유소에 마련된 재해대책본부가 가족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려는
실종사 가족들에게 냉정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이들의 분노를
증폭시키며 비난을 사고 있다.

김모씨(28.여)는 "백화점 A동 지하1층에서 근무하는 조카를 찾으로 구청과
각 병원 대책본부를 밤새 수십번은 왔다갔다 했는데도 강압적으로 구청으로
만 가라고 했다"며 대책본부를 비난하고 "이게 고통분담이냐"고 거칠게 항의.

<>.인명구조반은 에어백 동력절단기등의 장비를 동원,무너져내린 콘크리트
더미를 조심스레 헤쳐가며 사상자를 찾아냈으나 잔해가 워낙 많은데다
철근을 많이 절단할 경우 콘크리트더미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미8군소속 소방대원 이영준씨(38)는 "특수장비를 이용,지하3층 주차자아에
접근해 3-4명이 철근더미에 깔려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으나 철근을
자를 경우 큰크리트더미가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같아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며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와 대구지하철도시가스 참변과 마찬가지로
119구조대와 한국응급구조단 해병전우회의 활약이 돋보여 주변으로
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특히 해병전우회 2백40여명은 사고발생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현장에
도착, 밤낮을 가리지않고 구조작업을 벌였다.

이들은 구조대원들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지하 4층까지 침투(?),"귀신잡는
해병"의 용맹함을 여지없이 과시.

<>.이번 사고로 왼쪽다리를 잃은 20대 초반의 여인이 경찰과 언론사
시민등의 도움으로 다리봉합수술을 받게됐으나 복부출혈등 다른 부상이
너무 심각해 수술도 받지못하고 위독한 상태로 빠져들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여인에게 다리를 되찾을 가능성이 보인 것은 TV방송에 "방배동
제일병원에 여자의 다리가 보관돼있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이에앞서 이 여인을 구조한 권영목씨(34)가 이날 새벽 1시께 경찰의
협조를 얻어 잘려진 다리를 냉동상태로 병원에 옮겨놓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복부출혈로인한 수술을 받은 직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바람에 애써 찾은 다리봉합수술은 계속해서 연기되는 실정이다.

<>.이날 오후 구조된 사람중 임신 9개월의 백화점직원도 포함돼있어
주위에서는 부상자의 초인적 모성애에 감탄.

1층 수입코너에서 근무하는 방연숙씨 (37)는 콘크리트와 철골더미속에
깔려 신음하다가 소방대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는데 산모와 태아
모두 건강한 것으로 밝혀지자 모두 내일인양 환호성을 치기도.

방씨는 "건물이 내려앉는 순간 한때 정신을 잃었지만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짐하곤 했다"고 말하며
뜨거운 모성애를 보였다.

<>.사고현장에는 한 방울의 피라도 보태려는 헌혈의 발길과 복구작업에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하려는 시민들의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아 그나마 놀랜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인근 서울지법과 사법연수원에서도 판사 사법연수생 직원을 비롯,반포동
주민 1천여명과 가톨릭의대생등은 인근 병원에 마련된 헌혈차에 모여들어
가뜩이나 모자른 피를 보탰으며 거여동 3공수여단 비호부대소속장병
1백여명도 버스를 나눠타고 삼성의료원에 도착,헌혈대열에 동참했다.

<>.이에비해 사고현장에는 구조작업의 혼란한 틈을 타 백화점주변에 꺼내
놓은 골프채 의류 액세서리등을 훔치는 파렴치한들이 극성을 부렸다.

이날 낮 12시까지 서초경찰서에 연행된 좀도둑은 모두 18명이며 이중에는
번듯한 직장의 회사원도 있어 경찰관계자들이 어이없어 하기도.

이중 이모씨(20)는 카메라기자가 갖고다니는 가방을 둘러메고 기자로
행세하면서 의류 52만원어치를 훔쳤으며 회사원 이모씨(30)는 골프채
7개(2백80만원상당)를 훔치다 경찰에 덜미.

<>.인원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자
로 나서 직접 구조활동을 펼쳤으며 군.경찰및 소방대원등에게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는등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전개.

사고당일부터 인명구조 작업을 하다 서로 친해진 오현국씨(38)와 최베드로
씨(28)는 "방송을 보다가 하도 답답해 현장에 달려왔다"며 "생존자를
구출할 때는 내가 살아난 것처럼 기쁘지만 죽은 사람을 빼낼 때는 내가
죽는 것처럼 슬펐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