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다점포망의 구축으로 규모의 메리트를 추구해야 할 유통업체로서
는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이 지방화전략에 주요 변수로 떠올라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유통업계가 예측하는 지자제 이후의 기업환경 변화는 "단기적인 혼란
장기적인 발전"으로 요약된다.

지자제의 시행초기에는 어느정도의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겠지만 결국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정부가 유통업의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우선 초창기에는 지역상권의 주도권을 놓고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유통
업체와 토착화된 지방 중소업체간의 힘겨루기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지방업체의 반발과 관할업체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지방정부의 속성상 이른바 지역이기주의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것.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시내 농수산물 공급문제다.

서울에 본사를 둔 수퍼체인업체의 경우 현재 인천시내의 자사점포에는
1차식품을 직접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가 시내 도매시장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은 반드시 구월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

이외에도 지방정부의 입김이 개입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는게 업계의
진단이다.

한양유통의 가재학대리는 "점포 하나를 운영하려면 담배 정육 양곡 등
10여건의 인허가를 따로 받아야 된다"며 "유통업체가 지방정부의 미움을
받고서는 사업하기 힘든게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정부가 당장의 세원조달을 위해 각종 지방세의
징수를 강화할 것도 예상된다.

특히 지방세의 경우 토지 관련 세금이 전체량의 절반을 넘는데다
현도소매업진흥법상 3천㎡ 를 넘는 백화점은 해당지역 심의위원회로부터
점포개설허가를 받게 되어 있어 부동산매입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각종 행사의 기부금 협찬금 등 준조세의 증가도 경영환경을 악화
시킬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업계관계자들은 지자제가 궁극적으론 유통업의 활성화를 앞당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정부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대형 유통업체의 유치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역주민의 고용기회와 소득을 늘리는데는 유통업이나 서비스업이
최적이다.

유통업은 제조업과는 달리 공해나 산재 등 환경파괴의 우려도 없다.

상품공급을 원할하게 함으로써 주민복지에도 일조하는게 유통업의 기능인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유통법 전문가인 최성근박사(법제연구원)은 "60년대말 제정된 일본의
대점법 역시 대형업체로부터 지방중소업체를 보호한다는 취지하에 만들어
졌으나 최근엔 시장개방 등에 대비 유통업의 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해 폐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퍼체인협회 이광종전무도 "지방자치제의 모범이라할 미국도 초창기엔
주정부가 외지의 업체를 견제했지만 최근엔 도시재개발 등을 통해 대형
쇼핑센터나 백화점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정부가
가격파괴업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이를 도외시하지
못할 것"으로 낙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자제하에서는 누가 현지기업화 등으로 적응을 빨리
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발빠른 선두업체들은 벌써부터 지역밀착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오는 8월말 개점할 광주점을 운영할 별도법인을 설립했다.

1차로 선발한 3백70여명의 인력도 지방경제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모두 현지에서 채용했다.

오는 9월 광주에서 열리는 미술잔치인 비엔날레에 롯데가 5억원 신세계가
3억원등 경쟁적으로 후원금을 내는 것도 현지소비자들에게 "우리는 결코
외지인이 아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자제시대 역시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상훈을 다시
일깨우는 셈이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