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에 가격파괴바람이 거세게 불던 지난해 여름.

일본의 경제주간지인 "닛케이(일경)비즈니스" 겉표지엔 재미있는 그림
하나가 실렸다.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대만 미국 등지의 상품들이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오는 장면이었다.

그림은 당시 일본 유통가를 휩쓸던 가격파괴 열풍이 해외에서 생산된
저가품들을 수입판매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임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양평동에서 국내최초의 회원제 창고형 매장으로 개점된
프라이스클럽에서는 게스청바지를 사려는 고객들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시중가격이 7만-8만원대인 게스청바지를 2만-3만원에 팔자 고객이 몰려든
것이다.

"외제청바지는 수입상과 대리점 등을 거치는 동안 높은 유통마진이 붙어
국내에서는 터무니없이 비싸진다. 우리는 미국 프라이스클럽이 매입한
제품을 직수입,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 싸게 팔수 있었다"

프라이스클럽 관계자의 설명이다.

프라이스클럽은 게스청바지를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한정판매하며
소비자들의 구매경쟁을 부추김으로써 "확실하게 싼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경쟁사들은 이를 통해 90년대 유통혁명에선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시장개방으로 수입상품이 밀물처럼 들어오는 상황에서 질좋고 값이 싼
해외상품을 누가 먼저 발견해서 소비자에게 신속히 전달하느냐가 싸움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유통업체가 경쟁적으로 해외상품개발에 나선 것은 사입원가 자체를
파격적으로 낮출수 있는 새로운 상품공급루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소비자들의 의식변화도 한 몫 거들었다.

"품질좋고 가격만 싸다면 외제품이라도 상관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

유통업계의 변화는 해외상품팀의 위상이 강화되는 것에서도 실감할수 있다.

해외상품팀이 사장직속기구로 설치되고 있다.

한양유통의 가갑손사장은 지난해 조직을 개편하며 상품과 물류는 직접
사장이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한양유통은 이후 아시아지역 8개국의 공동브랜드상품인 "메리통"을
선보이는가 하면 무역업에도 뛰어들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해외상품팀을 별도조직으로 독립시켰으며 외국현지의
주재원도 미.일위주에서 동남아 중국 등지로 확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송철순과장(해외브랜드담당)은 "외국상품이라고 거부감만
갖는다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공급해준다는 유통업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해외상품개발은 피할수 없는 대세임을 지적했다.

해외상품개발엔 백화점 수퍼마켓 같은 소매점 뿐만 아니라 도매업체도
나서고 있다.

선경유통은 오는 9월부터 미국 캠벨사의 아노츠비스켓을 국내에 독점수입
판매하며 콜럼버스는 7월부터 M&M초콜릿을 직판할 계획이다.

유통업계는 나아가 외국에 직접 생산공장을 지어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는
현지생산체제를 시도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지난해 의류업체 한창과 손을 잡고 중국 산동성 청도시에
신사복공장을 건설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생산된 의류는 내년초부터 프라이스클럽에서 판매되는데 예상가격
은 7만-8만원대로 낮게 책정돼 있다.

한양유통의 메리통같은 다국적 상품개발도 한 추세다.

한양유통의 조응래해외상품팀장은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자본과 기술을
대고 중국이 생산하는 식의다국적 기획상품은 품질과 가격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 소비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해외상품개발수준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 유통업계 해외상품
팀장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세계백화점의 청도공장 건설에서 실무주역을 맡았던 김선민대리는
"유통업의 세계화는 매장의 직접진출로 완성된다"며 "국내업체간의 해외정보
공유등 국가 차원의 대응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