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북경 쌀회담에서 남북한은 19일 1차로 5만톤
(35만섬)의 쌀을 제공키로 합의를 봤다.

이로써 남북직교역형태로 5천톤의 쌀을 북에 보냈던 지난 91년7월 이후
4년만에 남한쌀이 다시 북에 들어가게된다.

양측은 사흘간의 회의끝에 현재 <>제공될 쌀의 양 <>제공조건 <>교역형식
<>운송방법 <>추가지원문제등에 관한 개략적인 밑그림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우선 남측은 1차적으로 5만톤의 쌀을 장기저리방식으로 제공하고 북측은
이를 구상무역형태로 상환키로 했다.

우리측은 원래 "무상"을 염두에 뒀으나 북측이 이를 사양했다는 후문이다.

남측으로서도 무상으로 할 경우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 유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정부는 남북간 교역을 "민족내부간 거래"로 규정, 세계무역기구
(WTO)나 국제식량.농업기구(FAO) 협정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선 FAO가 규정한 "1천톤이상의 거래시 통보의무"를 피하기 위해
정부가 이번 "유상제공"을 결정했다는 시각도 있으나 외무부관계자는 "한국
은 현재 FAO협정에 가입해 있지않기 때문에 대북무상지원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유상"조건은 북측의 "체면"을 세워준 결과라고 볼수 있다.

교역형태는 당국간 거래가 아닌 민간거래의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조선삼천리총회사간에 수출입
계약을 체결, 대금 또한 이들을 창구로 해 주고받기로 했다.

그밖에 운송은 선박편을 이용한다는데 합의했다.

차량을 이용할 경우 북한주민에게 쉽게 노출된다 점이 고려됐다.

정부는 이번주중 선적을 할수 있도록 현재 대부분의 준비작업을 마친
상태다.

추가지원은 경수로협상 추이등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본후 검토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봤다.

북한은 현재 남한에 최대 30만톤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우리측은 최대 15만톤까지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이밖에 이번 회담에서 최근 피랍된 우성86호 문제와 관련,조속한
시일내에 피랍선원 전원을 송환키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북한은 "남한쌀은 우성86호와 맞바꾼 것"이라는 선전을
대내외에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어쨌든 분단이후 최대규모의 남북교류가 될 이번 쌀지원은 합의주체가
남북한당국이라는 점에서 향후의 남북관계개선의 전환점이될 전망이다.

물론 북측은 "공사간 무역"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이나 일단 당국간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이는 앞으로의 경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것이
분명하다.

특히 우리측 대표가 남북고위급회담의 산물인 경제공동위위원회 위원장
(재경원차관)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남북경협 문제도 이번 회담에서 심도
있게 논의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이번회담을 계기로 현재 5백만달러로 묶여있는 대북
투자상한선이 상향조정되는등 정부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상당히 유연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이번 회담이 성공리에 끝났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당초 3일간으로 예상했던 회담이 자꾸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웅배통일부총리는 19일 기자들에게 "회담은 잘 되고있다"면서도
"끝나려면 하루 이틀은 더 걸릴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당국자는 "5만톤의 쌀을 주고받는 문제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담지연의 진짜 이유는 "쌀"이 아니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쌀문제는 이미 협의가 끝났으며 "다른 문제"로 남북간 줄다리기가 계속
되고 있다는 것.

"남북이 오랜 만에 만난 만큼 할 얘기도 많을 것"이라는 나부총리의 말이
시사하듯 양측은 이번 회담을 통해 <>광복50주년기념 8.15공동경축행사
<>이산가족 상봉 <>정상회담 개최문제등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이번 회담결과엔 "깜짝쇼"성격의 내용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일고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정부여당이 호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북한과의 경협확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투자보장협정 및 이중
과세방지협정 체결을 협의했다는 설도 있다.

경제를 잘아는 이석채차관이 이같은 문제를 그냥 넘기고 올리는 없다는
데서 나오는 관측이다.

결국 이번 회담은 이들 부수적 사안에 관한 "이면타협"이 순조로히 진행
되느냐에 따라 발표시점도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20일이나 21일쯤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