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포항제철에서 지급된 2천여억원의 명예퇴직금을 놓고 금융기관
들간에 한판 승부가 벌어졌다.

대구경북지역에 있는 지방은행으로서 곳곳에 지점을 심어놓고 있는
대구은행이 눈독을 들이는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포항제철의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에 밀려 명예퇴직자명단을
구하는것조차 쉽지않았다.

결국 대구은행의 예금유치작전은 큰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끝났다.

10개지방은행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구은행도 시중은행인
주거래은행앞에선 꼼짝할수 없었던 것이다.

한일은행이 버티고 있었던데다 예상과는 달리 포항제철에서 퇴직한
사람들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지방은행
으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는게 대구은행측의 설명.

지방에 큰 기업체의 본사가 있는 경우도 많지않지만 포철처럼 본사가
지방에 있는 경우에도 그 자금은 서울로 올라가버려 지방은행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전지역에 있는 대덕연구단지의 큰 자금들이 해당지역에는 거의
남아있지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2월 한국은행의 "지역금융통계"자료에서 나타난 비통화금융기관에
의한 지방자금유출상황을 보면 더욱 극명하다.

모두 1백29조5천4백여억원이 자금이 지방에서 예금됐다.

그러나 지방에 대한 대출금은 73조9천8백억원에 불과했다.

55조5천6백억원가량의 지방자금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갔다는 분석이다.

예금액의 43%가량이 서울로 역류되고 있다는 것. 지역총생산에 대한
금융저축의 비율인 금융연관비율은 수도권이 2.63으로 전국평균 1.75
보다 높다.

반면에 지방은 0.99로 전국평균에 크게 못미친다.

그만큼 금융경제와 실물경제가 괴리돼있다는 것이다.

지방기업들이 필요로하는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들이 최근 지방화전략을 요란스럽게 주창하기 이전부터
이처럼 만연해있는 자금역류를 시정하려다보니 지방은행들은 자연스레
지방화에 모든 영업의 초점을 맞추게 됐고 별다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지방은행들의 지방금고유치추진도 자금역류방지전략의 한부분이다.

경기은행은 지난2일 "공공금고유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구은행이 지난94년 7명의 인원으로 시도금고유치를 위해 "공공금고
유치위원회"를 구성한게 시초가 됐다.

이같은 위원회들은 지방은행의 가장 큰 현안인 시도금고유치와 함께
의료보험조합자금 연.기금자금 보험료등의 역류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금융계의 큰손인 각종 연기금의 자금은 각지역에서 조성된다.

그러나 이들 연기금은 지방은행에 자금을 선뜻 맡기려하지 않는다.

체육연금은 올해초 지방은행에 예금을 주지않으려다 지방은행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일부 지방은행이 개별적인 방법으로 접근,예금을 일부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지방은행들이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의료보험조합자금.

보건복지부에서 지난달 각 조합에 금융기관별 금리를 조사한뒤 운용
하라고 지시한데 대해 지방은행들은 자금역류를 부추길 것이라며 지역별
배분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방은행을 통해서 자금역류를 방지하지 않고는 지역경제가 발전할수
없다는게 지방은행들의 주장이다.

93년도에 수도권의 어음부도율은 0.09%였던 반면에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0.4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지방기업들이 취약한 데에는 자금역류현상과 부족한 금융지원등
부실한 지방금융시스템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금역류방지를 주장하는 지방은행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기만하다.

시중은행에 비해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들이 개별 기관을 상대로
각자 로비를 벌이자니 성과도 적고 주장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자금력을 동원한 시중은행은 물론 "득표"를 담보로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 농협에 밀려 자금역류현상방지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지방은행들은 지방자치제선거가 끝난 뒤에는 이같은 자금역류현상을
조금이나마 시정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의지가 없이는 쉽게 해결될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다.

< 김성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