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인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업무에 밝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고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머물고 있는 경우도있다물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채 자칫 그릇된 결정을 내릴 때는 회사를
망치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의 양부회장은 양재봉회장의 뒤를
이어 대신증권을 사실상 이끌어가고있다.

그는 매주 금요일 임원회의를 직접 주재,회사의 주요한 현안을 보고받고
임원들간 토론을 거쳐 처리방향을 결정한다.

물론 회사의 아주 주요한 사안에대해서는 부친인 양재봉회장이 획을
긋는다.

그러나 가족을 회사보다 먼저 생각하라고 강조하고있는 양회장이
양부회장에게만은 회사일에 전념하라(양부회장의 고백)고 당부할
정도로 회사업무에 관한한 부친이 그를 믿고있다.

그는 지난 75년 공채 1기로 입사, 영업 법인 기획등 주요부서를 두루
거쳤다.

또 지난 70년대후반 부친이 박황사건으로 회사를 떠나 있을때 "평범한
사원"으로 2년여동안 자리를 지킨 경력을 갖고있다.

이러한 경력때문에 그는 다른 2세들과 차별화되고있으며 증권가에서도
비교적 증권맨으로 인정을 받고있다.

평소 검소한 생활에 몸베어 구두쇠라는 소리를 듣기도하는 그는 쓸
곳에는 반드시 쓴다고 말한다.

대신의 양부회장을 증권을 바닥에서 익혀온 실무형 2세라고 한다면
쌍용의 김석동부사장은 해외에서 오래 공부한 학구형 2세라고 할수있다.

미국조지타운대에서 외교학석사를 받은 그는 쌍용투자증권의 국제분야
개척에 솔선수범하고있다.

증권시장이 처음으로 개방된 지난 93년 그는 미국의 한 기관투자자로부터
건당 주문액수로는 최고로 기록되고있는 7천만달러(5백60억원)에 달하는
매수주문을 따내 증권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최근에는 인도등
동남아시장을 개척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입사 8년만에 부사장으로 진급했지만 상사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고있다.

최근 자신이 유능하다고 본 차장 한명을 부장으로 승진시키고자
했으나 명호근사장이 거절했는데 깨끗이 수긍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 최근 사옥을 여의도로 이전한 기념으로 레이져쇼를 벌이느냐하는
문제로 찬반논쟁이 벌어졌을때 추진하는 쪽의 손을 과감히 들어
과감하게 추진한다는 후문도 있다.

고려증권의 이창재회장과 대유증권의 이태수 부회장 동서증권의
김대중부회장도 경영에 많이 참여하고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위환경과
증권업계의 경력등으로인해 직함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게
중론이다.

고려증권 이회장의 경우 회장직을 맡고있지만 주로 국내 업무에
주력하고있는 편이다.

이 명예회장이 해외업무를 많이 챙기고있고 협회부회장을 맡고있는
이정우부회장이 대외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적으로 국내분야에만 주력하는
이미지를 주고있다.

이 회장의 부친은 최근 까지만 하더라도 매일아침 임원들에게 자신의
경영방침과 철학을 강연할 정도로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형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지난해 4월 증권업계에 뛰어든 대유증권의
이부회장은 아직 증권업에대한 경험이 적어 배창모사장에 경영의
대부분을 위임하고있는 편이다.

동서증권의 김대중 부회장도 주로 국제분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조용한 스타일로 전해지고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점차 경륜을 쌓아가고있어 점차 경영대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대유증권의 이 부회장은 제조업을 창업 운영한
경력을 갖고있어 점차 홀로서기를 시도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