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8월, 일본이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했을 때 일본의 주요대도시는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당시 집을 잃고 끼니를 찾아 헤메던 일본국민 가습속에는 침략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의 전쟁희생자를 내게한 일본정치지도자에 대한 원망이
응고되어 있었을것이다.

이 상황에서 제기된 것이 "1억총참회론"이다.

"1억총참회론"이란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전국민이 져야한다는
것으로 표면적으로 전국민이 반성해야 한다는 이론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도 전쟁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과 통하는것이었다.

국민 모두에게 전쟁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일본이 전후복구사업이 어느정도 틀이 잡혀 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게되자 연합국측에 의한 "도쿄전범대판"을 비판하면서 일종의 "한정적
전쟁책임론"을 전개하게 된다.

그 논리는 제1차세계대전후 국제연맹이 창설되기까지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아시아 침략과 식만지배는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일본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배도 문제될것이 없고 다만 그후에 도발한 제2차대전에 대한
책임만 인정된다는 논리었다.

그러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면서 제2차대전의 성격마저 일본의
"자위전쟁"이었다는 변명으로 각색하기 시작했다.

태평양전쟁이란 미.영.중.화란등에 의한 "ABCD포위망" 때문에 일본이
동남아에서 천연자원을 얻을수 없게되어 부득이 "자위"를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다.

이 설명은 태평양전쟁을 이르킬 당시의 논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일종의 "전쟁칙임전가론"이라 할수 있다.

그래서 태평양전쟁의 결과 서구의 식민지였던 아시아는 독립을 획득하게
되었고 아시아가 형판상 태평양전쟁의 전장이 된것만이 유감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멀리는 한일회담 당시의 구보다(구보전)망언으로 부터 최근의 와타나베
(도변미지웅)전 외무장관의 망언에 이르기까지 일본 지배세력의 사고와
본심은 일관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이 가끔 "사죄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의 체면치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생각된다.

와타나베가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하게 타결된 것으로 무력으로 이뤄진게
아니라"고 말한 것은 "역사적진실을 왜곡하는 파렴치한 망언"이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정부가 그 발언의 취소와 사과를 받아내야 할것은 물론 다시는 그런
망언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