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용 밀(소맥)에 살충제를 뿌리다 못해 범벅하다시피 하는 미국
현장의 사진보도를 보고 느낀 충격은 좀처럼 잊지 못할것 같다.

곡물 육류 과일 해산물등 온갖 외국식품의 수입이 활짝 개방된 마당에
이제 마치 나자신의 건강이 외국 농부의 손아귀에 쥐어진 듯 무척
허전하다.

지적재산권 보호와 함께 농수산물 수입개방을 최대특징으로 한
새 무역체제의 출범으로 미국을 필두로 한 외국식품의 수입사태는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예상을 뛰어넘어 우리 눈앞에 밀려오는 엄청난 현실을
대할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엄두가 안날 정도다.

몇년을 끈 우루과이라운드 시비에 식품안전은 초점에도 끼이지
못했다.

최근에야 정부가 제도의 보완을 모색한다고 떠들지만 막상 하는
짓은 유통기한제의 폐지등 국민건강강화 방향이라기보다 외국압력에
굴복한 후퇴라는 인상이 짙다.

소비자문제연구 시민의모임이 입수해 제공한 이 증거에는 실로
경악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조사지역이 여러 작목의 농산물을 원거리 해상수송으로 수출하는
다름아닌 미국이라는 점에서 상황적 개연성은 더욱 높아 보인다.

아무리 잘 썩는 농산물의 수출이 중요하기로서니 품목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먹을 식품에 살충제를 마구 뒤섞는 일은 한마디로 비인도적이다
.

특히 쌀다음의 주식으로 수십년간 미국 밀가루 분식을 해온 한국인에겐
밀에 농약범벅을 하는 장면이 소름 끼친다.

쏟아져 올 오렌지 자몽등 빛좋은 과일 또한 무섭다.

더욱 기막힌 점은 약제살포의 기준치가 완전 무시되어 100배이상
듬뿍 섞는 일이 흔하다는 증언이다.

아무리 수출이 중요하기로 수입국 국민의 건강은 한치도 고려치
않겠다는 반문명성이 가증스럽다.

그 좋은 반증자료는 자국민이 먹는 내수품의 약제살포엔 펄펄 뛰는
2중적 기준이다.

91년 수입해간 한국산 배를 국제기준치 이하의 농약(페니트로치오)
검출을 이유로 폐기처분한 전력이 웅변한다.

물량으론 미국만 못해도 중국이나 동남아등 다른 농수산물 수출국과도
유사한 문제는 안고 있다.

중국산 식료나 약재등의 유해성은 이미 많은 논란을 불렀다.

수출 바나나를 농약통에 담그는 일부 동남아국의 관행도 목격되었다.

이런 시대에서 문제해결의 첩경은 무엇인가.

자국민의 건강을 스스로 지킬 능력배양과 제도의 완비다.

당사국에 직접으로 법적구제를 포함한 모든 대항수단을 강구하는
일,국제적으로 여론을 환기시켜 자제를 촉구하는 일 모두가 그럴만한
능력의 보유를 요건으로 한다.

이번 자료를 발굴한 일본의 소비자단체(자손기금)같은 능력과 의지가
한국에도 갖춰져야 한다.

불량 수입식품의 리콜제,미국식 식품의약 심사제 도입등 제도도
좋다.

그러나 결정적인 선행요건은 소비자 스스로 불량식품을 판별,배척할
자위능력의 배양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민과 관이 따로 놀 이유가 없다.

외국식품의 홍수를 앞두고 그 흙탕물을 막으려면 과학적이고 현실적으로
막을 능력을 기르는 일이 먼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