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증권의 원국희회장은 구두쇠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원회장에 대한 인물평을 구하면 처음나오는 말이 구
두쇠론이다.

식사 한끼에 5천원이상을 쓰는 법이 없다는 설명도 겯들여진다.

물론 그 자신뿐만이 아니다.

금액를 정해주지는 않지만 임직원들에게도 허튼 돈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와 복사판처럼 닮았다고 평가받는 김부길사장도 싸구려
생선구이로 점심을 때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신영증권의 임직원중 회사돈으로 골프를 치는 사람도
없다.

김부길사장도 자기돈으로 골프를 치고 모골프클럽의 회장을 맡고있는
김태길 전무도 결코 회사돈으로 골프를 치지는 않는다.

그러니 접대용으로 하나쯤은 가질만한 그흔한 골프회원권도 이회사
재산목록에는 빠져있다.

월급을 모아 신영증권을 인수했다는 원회장이다보니 이회사의 짠돌이
사풍이 어떻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법인 약정을 위해서는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로비도 해야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골프장과 술집을 전전해야하는 것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증권브로커라는 직업이지만 신영증권만큼은 돈을 쓰지않고
영업한다.

그래서인지 신영증권은 매출로는 결코 중소형증권사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또 그럴 가능성도 적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약정고는 13위권을 맴돌고 자본금도 8백억원을 겨우 넘겨 중형증권사
로서도 초라하다면 초라한 수준이다.

급변하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도 그래서 아직은
숙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질의 경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생산성으로 따지면 그 어떤 증권사도 쉽게 넘볼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영업사원 개인별 약정은 단연코 1위다.

외국인 투자가에게도 결코 술대접을 하지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화사를 찾는 외국기관투자가들이 많아지고있다.

"유별난 한국의 증권사를 구경삼아 찾아 오는 외국인들이 더많다"며
이회사에서 국제업무를 맡고있는 한관계자는 파안대소한다.

고객들도 한번 이회사에 구좌를 트면 왠만하면 다른 증권회사로 구좌를
옮기지 않는다.

"종목을 강권하는 일도 없고 잦은 매매를 하지 않아도 눈치를 그리 주지
않는다"고 8년째 이회사 고객인 K씨(56세)는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손님들이 모여들고 소수정예 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었다고 이회사의 한 임원도 스스로를 평가했다.

원이 신영증권을 인수한 것은 지난 71년.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대림산업에 입사했다가 계열사인 서울증권으로 옮겨왔고 때마침
매물로 나와있던 신영증권을 아예 인수해버린 것이다.

당시 금액으로 적은 돈은 아니지만 동업자 7명이 모여 한사람이
5백만원씩을 출자해 탈월급쟁이의 꿈을 이루었다.

"지방출신인 그는 대학에 다닐땐 학교에서 잤고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한동안 숙직실에서 자면서 돈을 모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구두쇠
원회장의 창업사에 숨어있다.

부친의 장례때 부조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설의 한대목. 그러나
구두쇠 원회장과 일하는 것이 그렇게 편할수 없다고 임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형식이 없는 사람이어서 비서도 쓰지 않고 즐기는 산행을 떠날때는
결코 운전사를 대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이야기에 속한다.

70년대부터 이익의 일부를 주식으로 직원들에게 분배했고 직원들의
월급수준도 대형사를 넘어선다.

명동의 지점빌딩에 따로 회장실을 두고 여기서 백승조조흥증권 사장,
이만기한양증권 사장,엄일영 동서경제연구소 사장등 대학시절부터의
지기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담론하기를 즐긴다.

지기들과의 점심도 5천원짜리지만 돈은 항상 그가 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