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는 국내업계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또 원고에 따른 경영압박은 어느 정도일까.

업종별로 차이가 날수도 있고 희비가 엇갈릴 수있다.

그러나 조선 플랜트등 중후장대산업을 들여다보면 원고는 내우고 엔고는
외환임에 틀림없다.

우선 원고는 선박과 플랜트업체 엄청난 환전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대부분 달러베이스로 수출계약이 이뤄지고 수주후 2~3년의 공기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는 2~3년전 수주한 물량을 수출하면서 막대한 규모의 매출손실을
입고있다.

예를들어 9천만달러에 수주한 초대형유조선의 경우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
이 7백88원대인 연초에는 7백9억2천만원의 매출을 올릴수 있었다.

그러나 환율이 7백62원선으로 3.3%정도 절상된 현재의 원화매출은
6백85억8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친다.

가만히 앉아서 선박 1척에 23억4천만원의 매출을 까먹는 격이다.

이인성 대우중공업이사는 "지난93년 수주한 선박이 요즘 인도되고 있다"며
"93년 당시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을 7백80원선(선박인도시점기준)으로
예측했으나 뜻밖의 원고로 엄청난 환전손실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조선사들의 수주잔량은 3월말현재 1천2백88만GT(총t) 1백10억달러에
이른다.

올들어 원고가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국내조선업계의 매출손실규모는
줄잡아 2천8백60억원에 이른다.

선수금을 일부받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1천5백억원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

이는 국내조선업체들의 1년치 조선부문 순이익(올해예상액 2천억원 안팎)과
맞먹는 규모다.

원화가 3.3% 절상되는 바람에 연간이익이 다 날라갈 판이다.

엔고는 어떤가.

국내 조선업계는 3월초부터 엔고가 급속히 진행되자 내심 반가운 눈치였다.

해외시장에서 주경쟁상대인 일본업계의 가격경쟁력하락에 대한 반사이익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후판 항해장비등 일본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원자재의 비중이 20%정도로
높아 엔고로 인한 원가상승부담까지 떠안아야 할 형편이다.

엔고로 일본서 들여오는 원자재값을 10%만 올려줘도 총자재비가 2%늘어난다
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선가는 요지부동이다.

일본업체들이 엔고의 부담을 아직 선가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선가
그자체는 반도체처럼 환율변동에 즉각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랜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 대규모 기계업체들은 최근들어 플랜트부문의 수출을 대폭
늘려왔기 때문에 원고로 인한 타격은 더욱 크다.

최근 3년간 플랜트 수주실적을 보면 92년은 26억5천만 달러,93년 24억3천만
달러,94년 38억2천만달러로 급증하는 추세이다.

현재 공사를 진행중인 물량만도 어림잡아 70억달러어치에 이른다.

일본산 부품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기계업체도 엔고와 원고에 협공을 당하고
있다.

공작기계 사업에 뒤늦게 참여한 현대정공은 내수에 기반을 두고있는
대우중공업 화천기계등과 달리 수출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있는데 달러약세로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게됐다.

이회사는 컨트롤러등 핵심부품을 포함,원자재의 40%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엔고로 인한 원가상승부담이 높은 편이다.

이회사는 이때문에 가격인상을 검토중이나 엔고와 원고를 모두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워 채산성악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철도차량과 같은 대규모 수주품목도 문제다.

대우중공업은 대만으로부터 전동차량 3백량을 2억7천만달러에 수주,오는
97년까지 납품할 예정이다.

전동차량은 선적기준으로 수출대금을 받기때문에 앞으로 실어낼 물량의
환전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조선.기계 업계관계자들은 엔고로 국내업체들의 수출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때 원고에 벌벌떨고 엔고도 메리트보다는
부담을 더 느껴야 하는 것이 중후장대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 김수섭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