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화 정보화 노령화 남북통일 우주화... 잡힐듯 말듯한 희망사항
쯤으로 여겨질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30년후엔 오히려 구시대의 용어라며
푸대접을 받을지도 모른다.

변화속도가 가속화되는 세계에서 미래를 얘기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의 미래가 현재이듯이 과거와 현재의 괘적을 더듬다 보면
미래모습도 어렵풋이는 그려볼수 있다.

앞으로 30년후, 한국경제신문 2만호는 어떤 경제사회상을 담고 있을까.
미리 2만호의 지면을 읽어본다.

< 편집자 >
********************************************************************

"한국GNP, 프랑스 제치고 세계 7위". 서기 2025년 9월. S전자 K사장(63)
이 아침에 집에서 받아본 한국경제신문(2만호) 1면은 이렇게 장식된다.

이미 수년전부터 종이신문은 없어지고 PC모니터에서 기사를 검색하는
전자신문이 일상화됐으나 이날은 왠지 "옛스러움"을 맛보기 위해
특별히 기사를 인쇄해보았다.

화창한 가을 날씨만큼이나 상큼함이 K사장을 감회에 젖게 한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는 상전벽해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30년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놓고 시기상조와 이해득실을
들먹이며 열을 내 반대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96~2005년의 10년동안은 7%의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나 점차 선진경제로 진입함에 따라 성장률이 떨어져 그이후
20년간은 5%로 낮아졌다.

이에따라 1994년 4,018억달러(남한 3,769억달러,북한 249억달러)였던
GNP는 3조4,860억달러에 달해 독일에 이어 세계 7위에 오르게 됐다.

또 인구는 남북한 통일로 8,300만명에 달하고 1인당 GNP는 8,483달러
(남한기준 세계32위)에서 4만2,000달러(15위)로 높아졌다.

" "한국,화성에 우주왕복선 발사".이날 본지 1면 사이드에는 또 이처럼
득의양양한 기사도 실려있다.

30년전 다른나라의 도움을 받아 겨우 통신위성(우리별)을 띄울수
있었으나 이제는 미국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주개척자"로 나서게
됐다는 설명도 함께 곁들여 있다.

K사장이 출근해 보는 한국경제신문은 그러나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기사가 매시간대별로 다르고 관심분야별로도 상당히 세분화돼 있어서이다.

K사장은 집에선 "경제일반"을 뽑아 보지만 회사에선 업무관계상 "산업"을
위주로 구독한다.

이날 K사장이 접한 산업뉴스는 이전까지는 별개였던 컴퓨터 TV 전화
팩스등을 하나로 통합한 첨단기술의 등장과 이로 인해 방송 전화 출판
등이 융합되고 있다는 것.선진국 진입의 상큼한 뉴스를 접한 K사장은
한국이 이제 산업기술면에서도 앞서고 있음을 알리는 기사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30여년전에 이미 D램부문에서 선두를 차지했던 한국은 주문형반도체(ASIC)
플래시반도체등 비메모리부문에서도 선두를 유지하고있고 슈퍼컴퓨터
부문에서도 미국및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게 된지가 벌써
수년전이다.

이같은 정보기술 발달로 일상생활은 그가 30대였을때와 엄청나게 변했다.

1994년말부터 추진된 "정보고속도로"가 완성돼 집에서 3차원 그래픽과
비디오 영상을 통해 상품을 주문하고 지방에서 대도시 의료진과 장비의
도움을 받아 원격진료를 받는 시대가 됐다.

서울에서 전세계 유명 교수의 강의를 들을수 있고 자기 사무실에 앉아
비디오화상회의에 참여하며 원하는 사람에게 멀티미디어 우편을 보낼수도
있게 됐다.

뿐만이 아니다.

이날 신문은 산업구조의 변화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농업 수산업 목축업 광업등 1차산업은 거의 사라졌다.

생명공학 유전자공학등을 응용한 첨단농법으로 식량문제가 완전 해결돼
"맬서스 악몽"은 더이상 거론되지 않게 됐다.

또 광전자( opto electronics )를 이용한 첨단제조업,우주 항공 해양
등 신개발산업,전문 컨설팅업,실버산업등이 새로운 총아로 떠올랐다.

기업조직도 상당히 변했다.

이전엔 영속성( going concern )이 대명사였으나 이제는 프로젝트 또는
목표지향화돼 목표가 이루어지면 기업이 사라지는 일이 많다.

이전의 수직조직도 수평조직으로 전환돼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저마다
고유지식과 기술을 갖고 일하게 된다.

근무방식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근로개념은 이미 없어졌다.

재택근무나 변형근무시간제(flexible time)가 보편화됐다.

"출.퇴근"이란 말도 없어졌다.

개인직업의 유동화와 복수화도 진행돼 각자의 능력에 따라선 여러가지
직업을 동시에 가질수 있게 됐다.

같은 시간 평양시장인 H씨(54)가 보는 한국경제신문은 다른 신문처럼
느껴진다.

월남 2세대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뒤 평양에서 출마,초대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H씨.그는 정치쪽에 관심이 많다.

경제신문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달고있지만 종합정보매체로서 정치기사도
시간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날 정치기사는 지난달 이뤄졌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주제. 30년전 망국병으로 불리던 지역감정이란 후진적
양상은 이미 사라졌다.

통일에 따른 후유증도 치유됐다.

이에따라 대구출신이 광주시장으로,함경도 사람이 평양시장으로 선출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함북 나진 출신인 H시장도 이같은 시민의식이 있었기에 평양출마를
결심했고 결국 당선될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부문도 H시장의 빼놓을수 없는 관심분야다.

"한국여자 평균수명 100세".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식생활이 개선됨에
따라 30년전 68세였던 남자의 평균수명은 95세로,여자는 76세에서
100세로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이에따라 65세이상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노령화율도
5.7%에서 10.0%로 높아졌다.

1980년대후반 "내집마련"을 비관해 자살사태까지 빚을만큼 주택보급
사정이 열악했던 것도 개선돼 보급률이 97%로 높아졌다.

그러나 그늘진 면도 적지 않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걸 H시장도
안다.

우선 성의 자유화가 진전됨에 따라 미혼모가 급증하는데다 국제결혼이
많아지면서 단일민족때는 없었던 인종차별문제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자살률이 1.7%에서 5.0%로 높아진 것도 골칫거리의 하나다.

30년전 C은행에 들어가 이제는 중역이 된 W상무(58)는 금융관련
기사를 주로 본다.

W상무는 입행초기 재정경제원의 눈치를 보고 다른 은행과 경쟁하며
점포를 늘렸던 기억이 참으로 촌스럽게 느껴진다.

컴퓨터전산망을 통해 거의 모든 금융거래가 국제적으로 이루어져 점포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물건을 사고 팔때도 현찰이나 수표 어음등을 건네지 않고 스마트카드를
이용,계좌이체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은행 증권 보험등 각 기관별로 엄격히 제한되던 업무영역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이제는 유니버설뱅크가 등장,모든 금융업무를 하는 시대가 됐다.

이 모든 경제사회상의 변화를 실시간(real time)으로 전달해야 하는
한국경제신문은 이제 마감시간이란 개념이 없어졌다.

기자들은 사건이 있을때마다 기사를 전송하고 독자는 사건발생 즉시
이를 읽어보는 시대가 됐다.

< 홍찬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