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프로골퍼 닉 프라이스의 고향이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게 거의 없는
남부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다.

이 오지의 나라에서 한국차가 조립되고 있다.

세계 1백98개국에 자동차가 수출된다지만 이런 데서까지 우리차가 직접
생산된다는건 꽤나 의외다.

짐바브웨는 주민의 80%가 맨발로 다니는 곳.에스키모에게 냉장고까지
팔았다는 "독한 한국기업"이 이제는 맨발의 아프리카인들에 자동차까지
태울 모양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차종은 현대 엑센트.

연간 생산규모는 1천대에 불과하다.

이같은 적은 물량을 왜 여기서 현지생산을 해야하나.

"완성차를 팔려면 관세를 80%나 물어야 한다"(현대 남아공대리점 네빌
프로스트부사장).

그래서 자동차를 부품상태로 내보내 현지에서 조립하는 거다.

이른바 녹다운(KD)방식으로 하면 80%의 관세가 40%로 떨어진다.

"자동차업계가 해외생산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세장벽이다"(현대 수출
본부장 백효휘부사장).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자국산업보호를 이유로 완성차수입에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1백50%까지의 관세를 물린다.

시장 다변화전략에 걸림돌이었다.

그래도 미.EU등 선진국에 자동차가 계속 팔려만 나간다면 괜찮다.

문제는 선진국 수출에도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호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이나 EU의 시장개방 압력이 그것이다.

한국업체들이 개도국 생산을 늘리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같은 배경을 깔고 현지생산체제는 의외로 빨리 구축돼가고 있다.

현대의 경우 짐바브웨말고도 보츠와나 이집트 태국등에서 현지조립 생산을
늘리고 있다.

지난18일에는 필리핀에서도 조립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현대보다 한발 앞서 해외생산에 나선 기아는 이제 자동차의 본고장이라는
독일에서까지 KD생산을 시작한다.

과거 우리업체들이 선진국의 부품과 기술을 들여다 만들던 것과 정반대
모습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는 그저 부품을 공급하고 로열티만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큰 시장을 중심으로 직접투자에 나서고 있다.

51%의 지분을 갖고 내년초 완공되는 20만대규모 우즈베크공장이 그 전형적
인 예.

나머지 해외조립공장도 대부분 자체공장이다.

2000년 해외생산 1백만대 체제를 노린다는 대우 야심의 발판이다.

직접투자는 물론 대우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현대도 말레이시아에 자본을 투입해 공장을 짓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기아가 소하리 아산만에 이은 제3공장 개념의 현지공장을
구상중이다.

업체들의 계획을 모두 더해보면 2000년이면 2백만대에 가까운 자동차가
해외에서 생산된다.

현지생산이 시장다변화라는 의미만 담고 있는게 아니다.

이집트의 예가 그렇다.

"올해 현대차 마켓셰어가 1위"(이집트 현대대리점 라우프 가부르회장)라는
전망처럼 생산지역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다.

92년까지 한국차라곤 구경하기 힘들던 태국에서는 엑셀이 "베스트 5"
차종에 올라섰다.

기아 프라이드는 필리핀에서 아예 국민차로 지정받았을 정도다.

한국 업체들의 해외전략은 현지생산에 그치지 않는다.

"현지연구개발-생산-판매"의 일관체제가 최종 목표다.

해외연구소 확보 붐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대우워딩기술센터(DWTC).

다국적 연구회사인 IAD그룹의 영국연구소를 인력 1백30명까지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국내 자동차업계 최대 해외연구소이다.

기아도 곧 도쿄에 대규모 연구소를 개설한다.

"해외에 자동차를 내다팔려면 현지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DWTC 한기상
부사장)는게 해외연구소 설치의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선진기술의 습득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판매망의 세계화도 발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현대가 이미 거의 모든 나라에 판매망을 갖추고 있고 기아가 뒤를 따르고
있다.

올해 유럽에 첫 진출한 대우는 97년 미국상륙작전을 앞두고 "도상연습"에
골몰하고 있다.

그때면 쌍용도 미국행 배를 탄다.

자동차는 흔히 "달리는 국기"로 표현된다.

그 "달리는 국기"가 올해 1백만대 수출시대를 연다.

포니 첫 수출이후 20년만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뒤도 돌아봐야 한다.

양이 아니라 질로도 제위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김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