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맨들은 얼굴을 가린채 베일뒤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다.

까만색 선글라스 007가방 총총걸음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비정한
성격으로 묘사되곤한다.

그러나 놀라운 얘기지만 그들 서로간에는 어느 조직보다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돼 있다.

은밀성을 요구하는 업무를 하는데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동류의식이
자신들의 소속회사마저 초월케하는 동업자 의식을 만들어 낸다.

동업자간의 의리라는 면에서는 얼마전 공전의 히트를 친 모래시계의
"조직"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형태도 있다는 얘기다.

D증권사 P대리의 설명.

"물론 기브 앤드 테이크방식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역정보를 흘렸을
경우에는 냉정하게 소외시킵니다. 비정한 세계라는 얘기를 들을만도
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정보일수록 체온을 타고 전달되며 그런 정보라야
신뢰도가 높습니다. 정보맨들이 의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지요"

지난 8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아리송회".

초창기 멤버들은 현재 대부분 고참부장 내지는 지점장급으로 승진해
있다.

현재 멤버들은 대부분이 증권사 투자분석부나 조사부의 대리급.

하지만 아리송회의 OB(Old Boy)와 YB(Young Boy)들은 나이와 직급,
연배를 뛰어넘는 정과 의리로 뭉쳐있다.

연례적인 정기모임은 10여년째 계속되고 있고 연말 망년회엔 부인들
까지 동반해야 한다.

YB들 회식때는 OB들이 돌아가면서 돈을 댄다.

수요회회원인 D증권의 G대리는 "17명 회원 모두 형 동생으로 부를
만큼 혈연이상의 우애를 자랑한다"며 "지난 여름 안면도에 바다낚시를
가서 대자연속에서 친목을 다졌고 겨울엔 용평스키장도 다녀왔다"고
전하고 있다.

의리로 뭉쳐있다고는 해도 경비 충당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그래서 자체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증권전문가들 답게 회원들마다 일정금액을 갹출해서 주식투자 펀드를
만들고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필요 비용을 대기도 한다.

펀드가 중요한 돈줄이긴해도 회원들의 의리에 금이갈 소지가 있으면
바로 해체된다.

G대리의 경험담.

"월 10% 수익율을 목표로 펀드를 만들긴했는데 마음대로 안되더군요.
6개월만에 간신히 본전을 찾았지요. 펀드를 계속 운용하다가는 담당
회원의 잘잘못을 따지는게 불가피해 질거고 그러면 의리가 상할 것
같아서 공동합의하에 펀드를 해체했습니다"

정보맨들의 의리는 물론 상호 필요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보다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간의
동병상련식 감정",더 나아가 주먹세계에 더가까운 맹목적인 의리가
있다.

또 다른 수요회 회원이었던 H증권 L대리.지난 2월 정보회원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계단에서 실족,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맞아 회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가족이상의 어떤 것이었다는
후문이다.

"형 동생"들은 정보업무를 전면 중단한채 빈소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뒷치닥거리도 도맡았다.

전회원이 장지까지 쫓아가서 서럽게 오열하며 고인을 송별한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회원중에 누구라도 주식에 "물렸을때" 시시비비 판단에 앞서 도움을
주려고 발벗고 나서는 것도 맹목적인 의리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보맨들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증권가의 모래시계"
같은 것이라고도 말한다.

< 박기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