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여년전에도 고대바벨로니아와 이집트에는 의사가 있었다.

그때의 의사는 병마를 쫓아내는 주술을 하는 마술사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랍 인들에게는 외경의 대상일수밖에 없었다.

의약이 자유업이었던 고대그리스에서는 일정한 시설에서 의술수업을 받거나
경험이 있는 선배로부터 의술을 배우고 국내를 편력하여 의사경험을 쌓았다.

당시의 의사는 인격이 높고 학식이 뛰어난 자들이 많았다.

중세에는 승의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승원의학이 발달햇다.

10세기경 아랍에서는 개업의들이 조합을 결성하여 권리보호를 꾀하기로
했으나 과학적인 의술이 되질 못했다.

과학적인 의료가 급속히 발달된것은 르네상스이후였다.

그러나 의료비가 너무 비싸 비용이 싼 돌팔이의 진료를 받는것이 보통
이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의사라는 직업은 황금기를 맡게 되었다.

의사법이 제정되어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법적으로 보장되기에 이르렀는가
하면 의업이 단순한 영리수단이 아니고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천직이라는
의상주의적 집업관이 싹트게 되었다.

의사가 비로소 사회적으로로 조명받는 직업들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의사들은 치료의 실패나 환자의 사망시엔 엄청난 물질적 보상을
하거나 극형을 면치 못했었다.

5세기에 프랑스남부와 스페인에 걸쳐 있었던 서고트왕국에서는 의사들이
환자가족에게 현금을 보관해 두고 치료에 들어갔다.

치료가 안되거나 환자가 죽으면 환다가족은 치료비를 내지않는 것은 물론
의사가 맏겨 놓은 현금까지도 차지했다.

한편 북유럽의 메로빙왕국에서는 "의학적 태만"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었다.

580년에는 오스트리찰디아여왕이 이질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죽자 담당
의사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는 줄곧 향상되어
왔지만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분쟁은 피할수 없는 숙명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속성상 그럴수밖에 없다.

의업이 인기직업의 하나로 생각되어 온 한국의 의사들 반 이상이 의료분쟁
이 고통스러워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최초의 설문조사결과에 주목을
하지 않을수 없다.

가뜩이나 3D업종을 기피하는 사회적 추세에 편승하여 의료의 질을 저하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이 시급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