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감독(70)의 새영화 "말미잘"은 대가의 면모를 새삼 엿보게
한다.

그가 80년 "사람의아들"이후 15년만에 만든 이 영화는 일생을 영화와
함께 산 감독의 깊이와 노련함을 보여준다.

"말미잘"은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장과정을
그린 한국판 "양철북"이다.

혼자가 된 엄마의 애잔한 사랑을 담은 점에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말미잘은 갯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암수한몸의 바다생물. 꽃모양의
촉수를 건드리면 동그랗게 입을 오므리며 수축한다.

여성을 상징하는 말미잘은 이영화에서 주인공 소년의 성의식을 싹트게
하는 매개체인다.

동시에 바다와 섬, 어머니와 나,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아홉살짜리 섬소년 수영(천영덕분)은 아버지를 풍랑에 잃고 해녀인
엄마(나영희)와 함께 살아간다.

이웃소녀 짱아의 아랫도리와 말미잘을 비교 관찰하며 천진난만하게
자라는 그에게 세상은 동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자연법칙과 인간의 조건은 어린소년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다.

서울서 온 소설가 독고(이영하)의 등장과 엄마의 변화, 친아버지
같았던 최선장아저씨(안성기)의 번민이 그를 통해 비춰진다.

방학을 맞아 육지의 고모집에 놀러간 그는 매춘과 부조리로 얼룩진
사회를 엿보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뜬다.

그가 돌아왔을때 엄마는 없다.

독고아저씨에게 시집을 간것이다.

폭풍우속에서 최선장마저 하늘나라로 가고 혼자 남은 수영은 텅빈
엄마의 자리를 돌아보며 "아프면서 크는 나무"의 의미를 깨닫는다.

라스트신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서정적인 풍경과 일몰장면등을
롱테이크에 실어낸 화면은 노장의 저력을 확인케한다.

( 4월1일 명보/반포씨네마/영타운/롯데/동아극장/ 개봉예정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