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령 원자력연 원전사업본부장>

우리나라는 외국 원자력발전소 노형을 4종류나 보유하고 있는 세계유일의
나라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캐나다 원자력공사 프랑스 프라마톰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의 것을 차례로 들여왔다.

다양한 노형을 갖게된 것은 품질과 가격을 평가한 결과라기보다는
선진국의 제품을 돌려가며 사줘야했던 우리의 변변치 못한 위상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꾸어말하면 독자적인 원자로를 갖지 못한 "죄"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원자로형을 갖고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각고의 노력끝에 기술자립을 했다.

몇몇 선진국만이 가져 개발도상국은 비싸게 수입할수 밖에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원자로를 갖게 됐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왜 한국형이며 얼마나 한국형인가에
대해 모르는 실정이다.

공산품이 누구의 것이냐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것이 지닌 기술특성과
국내외 계약상의 위치,설계나 제작을 수행하는 주체,생산품의 최종책임등이
다.

이런 기준에서 볼때 한국형원전은 완전히 한국형으로 평가된다.

한국형 표준원전의 기본기술은 미국에서 수입했으나 그동안의 연구실적과
설계개선 항목들이 반영되지 않는 60년대의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많은 자금과 고급인력을 투입해 안전성과 성능을
대폭 개량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질등 부지특성이나 우리근해 바닷물 온도,한국인의
체형등을 고려한 1백여가지의 설계를 변경,우리 고유모델로 완성했다.

또하나 짚고넘어가야할 대목은 계약상의 위치이다.

외국에서 들여온 기술을 개량할 경우 계약이 뒷받침해줘야 우리것이
된다.

우리나라는 미국회사와 우리가 개량한 기술자료는 모두 우리가 소유하기로
계약했다.

따라서 우리가 설계 제작한 원자력발전소를 외국에 수출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프랑스나 독일 일본이 미국에서 기술을 도입할때도 이루지 못했던
원전 사상 최초의 일로 당시 세계 원전시장이 "바이어스 마켓"이었던
시운도 크게 작용했다.

원자력발전소는 다른 어느 에너지공급설비보다 기술집약적인 것이다.

물론 기술은 사람이 갖고 있기 때문에 설계와 제작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원자로의 모든 계통설계는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직접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중공업의 발전설비공장은 일본의 미쓰비시나 프랑스
프라마톰 생산공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최신의 공장이다.

완성된 원자력발전소의 성능과 안전성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것이
또한 프로젝트의 요체이다.

기술이 있어도 완벽하지 못하면 설계와 제작은 스스로 하더라도
최종책임은 기술도입선에게 맡길수밖에 없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게된다.

첫번째 한국형 표준원전인 울진3,4호기는 한국기관이 모든 책임을
지고 설계와 제작과 시공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면 그 노형은 한국형이어야한다.

그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한반도에 건설되는 원자력발전소는 한국형 아니면 북한형이어야
하지만 북한형이 없으므로 한국형이어야만 한다.

특히 한국형경수로가 현존하는 선진국의 어떤 원전과 비교해도 성능과
안전성 면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최신의 원전이라는 기술적인
이유는 차치하고라도 약 40억달러나 되는 막대한 비용의 상당부분을
우리가 부담하면서까지 우수한 우리 원전을 제쳐놓고 외국원전을
수입하여 북한에 공급할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 해서라도 한반도에 제5의 외국노형이 들어오는 모멸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

우리가 기술이나 재정면에서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줄수 있는 고무적인
상황인데 러시아형이니 독일형이나 하는 외국형이 거론되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역량을 집결해 안전하고 품질좋은 한국형 표준원전이 북한에
지원되도록 노력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