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은 증권사를 먹여살리는 야전사령관이다.

큰 지점의 경우 한달 약정이 1천억원이 넘어 15억원이 넘는 수수료
수입을 올리는 지점장도 있다.

은행지점장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증권영업맨으로는 야전군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지점장들이 "알거지 신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부하직원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래저래 출혈지출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데 지점장들의 고뇌가
있다.

출혈지출의 배경은 역시 투자손실의 일부를 물어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은 "한국적" 풍토.

지점장경력만 10년을 내다보는 S증권 L지점장(이사대우).

"지점과장시설 크게 한번 털리고" 증권계를 떠났다가 물좋던 88년
지점장으로 컴백했으나 89년이후 또다시 멍들 수 밖에 없었던 불운의
사나이다.

5억원정도 굴리는 대형고객에게 "확실한(?) 종목"에 대한 신용을
권유했다가 반토막이 났던 것이 불운의 출발이었다.

"네책임 내책임을 따지는" 분쟁이 났고 L지점장은 결국 어렵사리
마련한 집을 팔아 투자손실을 메꾸어 주고서야 주변 사람들이 무수히
쓰러져 가던 90년을 "살아남았다".

부인은 보험외판원으로 나서야 했으나 아직 전세집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D증권 경기도 지역의 K지점장은 불법인줄 알면서도 지난해 5천만원짜리
자기매매계좌를 만들었다.

사고때 지점장이 부담할 돈을 감당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금" 마련이
주 목적이었다는 설명. 유달리 드센 지역투자자들에게 혼쭐이 났던
전임지점장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이 계좌는 지금 잔액이 2천만원대로 줄어들어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지점장들이 얼마만한 돈을 물어주고 있는 것일까.

산업증권 정기영영업부장이 "증권회사 영업사원 실태조사"란 제목의
논문을 쓰기 위해 89년부터 92년까지 지점장들이 고객에게 물어준
금액을 조사한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지점장들이 투자손실을 물어주었다는 돈의 규모는 평균 4천4백만원.
더구나 앞으로 갚아야 한다고 밝힌 돈도 2천만원에 육박하고있다.

지점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최소한 32평짜리 아파트 한 채 이상씩은
날렸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장의 조사에서도 지점장 1백사람중 34명이 자기집을 팔고 남의
집에 세들어 가거나 사는 집을 줄여 이사를 가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대세상승기라는 지금은 어떤가.

전북 한 지역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D증권을 타도하라는 특명을 띠고
내려갔던 한 실력파 지점장은 최근 "서울복귀발령"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올초의 주가급락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고객들을 팽개치고 떠날 경우
분쟁이 우려되는데다 서울의 전세값을 감당할 능력이 것이 그의 고백.

C증권 정모지점장은 오는 6월 정년퇴직을 한다.

정년퇴직이라면 으례 두툼한 퇴직금을 연상하게 되지만 날자가 다가
올수록 퇴직금받을 일이 걱정다.

그가 손에 쥘 퇴직금은 겨우 몇 천만원선. 3억원을 웃도는 퇴직금에서
물어주거나 갚아야할 돈을 제하면 계획했던 개인사업은 꿈도 못꿀
처지다.

정지점장의 정년퇴직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만나러 오는 채권자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그는 요즈음 정기적으로 지점에 들러 "채무자"의 안부(?)를 살피는
"채권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