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샤넬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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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디자이너라면 지나치게 기발한 착상은 피하려 할 것이다.
나는 평균적인 여성을 위해 옷을 만들어 왔다" 여성의상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가브리엘 코코 샤넬(1884~1971)이 작가 폴 모랑에게
구술한 자서전에서 밝힌 패션관이다.
20세기 여성의상의 대중화시대를 연 디자이너다운 견해 피력이다.
귀족풍의 긴 치마를 무릎길이로 자른 샤넬라인을 창안해 냈고 깃털과
꽃 장식의 챙 넓은 모자를 단순한 샤넬모자로 대체시켰는가 하면
재력과 지위의 상징인 보석을 모조액세서리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여성을 긴 치마와 코르셋,긴 머리와 보석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입기 쉽고 활동적이고 여성미를 돋보이게 하는 샤넬스타일은 유행의
변전속에서도 여성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샤넬의 명성뒤에는 삶의 어두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골출신의 고아인 샤넬을 파리로 데려온 것은 정.재계의 실력자였던
영국인 보이 카펠이었다.
샤넬은 그녀의 연인이 된 카펠의 후원으로 1910년 파리 패션가에
"샤넬모드"라는 모자가게를 낸데 이어 1차대전이 일어난 1914년에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1919년 카펠이 교통사고로 죽는 슬픔을 겪었다.
슬픔뒤에는 기쁨이 찾아들 듯이 샤넬은 1920~30년대에 디자이너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녀의 사업은 번창하여 의상점 직물회사 향수연구소 모조보석공장에
종업원이 3,500명에 이르렀다.
그때 샤넬의 주변에는 유명인사들이 모여들었다.
한때 영국왕실의 웨스트민스터공과 사랑에 빠졌고 화가인 피카소와
달리,문인인 장 콕토와 지드,볼셰비키혁명으로 망명을 와있던 음악가
스트라빈스키와도 교류했다.
2차대전의 전운이 몰려온 1938년 샤넬은 파리를 떠나 53년까지
스위스에서 은둔했다.
당시 그녀가 연하의 독일첩보원과 사랑에 빠져 나치 스파이로 활약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샤넬의 친나치적 행적이 사실이었다는 영국정보부의
문서가 나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샤넬을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유혹의 악마"라고 지칭했던 장
콕토의 말을 되새기게 하는 일이지만 1954년 파리로 돌아온 뒤 열린
그녀의 마지막 컬렉션에 내놓은 샤넬슈트(칼라없는 둥근 목선의
재킷과 스커트)가 50~60년대 패션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은
패션사에서 그녀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0일자).
나는 평균적인 여성을 위해 옷을 만들어 왔다" 여성의상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가브리엘 코코 샤넬(1884~1971)이 작가 폴 모랑에게
구술한 자서전에서 밝힌 패션관이다.
20세기 여성의상의 대중화시대를 연 디자이너다운 견해 피력이다.
귀족풍의 긴 치마를 무릎길이로 자른 샤넬라인을 창안해 냈고 깃털과
꽃 장식의 챙 넓은 모자를 단순한 샤넬모자로 대체시켰는가 하면
재력과 지위의 상징인 보석을 모조액세서리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여성을 긴 치마와 코르셋,긴 머리와 보석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입기 쉽고 활동적이고 여성미를 돋보이게 하는 샤넬스타일은 유행의
변전속에서도 여성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샤넬의 명성뒤에는 삶의 어두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골출신의 고아인 샤넬을 파리로 데려온 것은 정.재계의 실력자였던
영국인 보이 카펠이었다.
샤넬은 그녀의 연인이 된 카펠의 후원으로 1910년 파리 패션가에
"샤넬모드"라는 모자가게를 낸데 이어 1차대전이 일어난 1914년에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1919년 카펠이 교통사고로 죽는 슬픔을 겪었다.
슬픔뒤에는 기쁨이 찾아들 듯이 샤넬은 1920~30년대에 디자이너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녀의 사업은 번창하여 의상점 직물회사 향수연구소 모조보석공장에
종업원이 3,500명에 이르렀다.
그때 샤넬의 주변에는 유명인사들이 모여들었다.
한때 영국왕실의 웨스트민스터공과 사랑에 빠졌고 화가인 피카소와
달리,문인인 장 콕토와 지드,볼셰비키혁명으로 망명을 와있던 음악가
스트라빈스키와도 교류했다.
2차대전의 전운이 몰려온 1938년 샤넬은 파리를 떠나 53년까지
스위스에서 은둔했다.
당시 그녀가 연하의 독일첩보원과 사랑에 빠져 나치 스파이로 활약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샤넬의 친나치적 행적이 사실이었다는 영국정보부의
문서가 나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샤넬을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유혹의 악마"라고 지칭했던 장
콕토의 말을 되새기게 하는 일이지만 1954년 파리로 돌아온 뒤 열린
그녀의 마지막 컬렉션에 내놓은 샤넬슈트(칼라없는 둥근 목선의
재킷과 스커트)가 50~60년대 패션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은
패션사에서 그녀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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