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덕 < 상록노농문제연구소장 >

바야흐로 세계는 동서냉전 해소후 새롭게 질서재편기에 들어섰다.

한국의 세계화도 그 추세에 따르는 것이며 모든 면에서 지각변동과 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청와대에서는 자기이익 방어에 철통같은 사법의 개혁과, 시행착오만
거듭하면서도 부패한 교육계에도 근본적인 수술 없이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발상부터 전환할 것을 밝힌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볼때 단군이래 가장 큰 역사라 할수있는 농업구조개선사업을
맡을 농정분야는 농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관건이 되는 기로에 서
있으니만큼 시급히 구습과 관행에서 탈피, 발상부터 전환해야 할것이다.

지난 2월15일 청와대에서 제3차농정개혁회의가 있었다.

이번회의에서 발표된 농어촌특별대책을 보면 우루과이라운드(UR)타결후
특위에서 내놓은 내용이 새로운 것이 없었듯이 여전히 기왕의 정책을 포장과
색깔만 바꾸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국농업도 구조개선을 해야한다는것은 6공화국때 이미 기정사실로 됐다.

그에 소요되는 예산을 10년에 걸쳐 42조원을 투입키로 했는데 문민정부
들어서 이를 3년 앞당겨 마치겠다고 한것 뿐이다.

새롭게 한것이라면 국민부담을 늘리는 농특세를 신설한 것이 고작이었다.

지난 일이지만 농정결정자가 대통령으로 하여금 쌀만은 대통령직을
걸고라도 절대 개방하지 않겠으며 수입하지 않겠다는 대국민공약까지
서슴지 않도록 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농특세도 그렇다.

UR타결후 농촌민심이 극도로 어수선해지자 농촌구출을 한답시고 농특세법을
통과시켰다.

작년 농특세를재원으로한 추경예산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문제가 많다.

추경통과전 정부는 한국농업에서 아직도 쌀농사가 주업인데 현재 1ha 농지
규모로선 너무 영세하여 기계화도 어렵고 수지도 맞출수 없다며 적어도 5ha
규모로 농토를 늘려서 기업모양의 전업농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국 150만농가도 쌀농사전업농으로 10만으로 줄여서 집중육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 필요한 농지규모화사업에는 단 한푼도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도 신정부가 발족하면서 신경제정책이라며 당초 농지규모화사업에
연간 5,000억원이 배정되었던 것을 오히려 2,300억원으로 줄이지 않았던가.

현재 우리농민은 쌀값이 국제시세보다 5배이상 높은데도 수지가 안맞는다고
야단들인데 그들이 어느 세월에 이윤을 창출하여 농토를 확대할수 있겠는가.

농특예산중 농로확장사업 예산도 농특과 농가에 진입하는 도로에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방명승지 관광도로중 그동안 예산이 모자라 공사가 중단된곳 등에 이
예산을 전용한 사례가 있었다.

농어민소득증대를 위해 농민들에게 2,3차산업 가공업 유통업까지 맡게
하겠다는 농촌특별 제2차대책도 어제오늘 한두번 나온것이 아니다.

또 성장작목별 자금집중지원도, 농촌 대학생학자금 지원도 이미 재탕삼탕
써먹어 식상한지 오래다.

이제 농정도 맹점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자성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들편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농정의 근본적인 초점은 농민들에게 신바람 나게 일할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두어야 한다.

말을 강가에까지 끌고 갈수는 있으나 물은 말이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15조원규모의 농특세사업을 비롯 어떤정책도 농민인식이
"그것은 정부의 사업에 불과할 뿐"이라는 시각일때 정책효과가 없을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농민에게 땅을 갖게 하는것은 장래 희망과 땀흘려 일하는 보람을 찾게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7일자).